왕실의 건강비법은?

'기년시안(耆年試眼·늙은이가 눈을 시험하다)'.

녹회색 대리석에 새긴 네 글자에 위엄이 서려 있다. 1758년 조선 21대 왕 영조가 65세 되던 해 자신의 시력을 시험하기 위해 돌에 글씨를 새겼다. 나이가 무색할 만큼 필획에서 힘이 느껴진다. 또 다른 돌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대 왕조와 그 존속 연수(年數)를 적어나갔다. "…우리나라는 단군과 기자(箕子) 이후에 신라 992년, 고구려 705년, 백제 678년, 고려 475년, 우리 조선은 지금 나라를 세운 지 367년이다(중략). 무인년 양지월 19일 밤에 광명대(光明臺·등불) 아래서 65세 된 늙은이가 직접 써서 안력(眼力)을 시험하다."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이귀영)이 15일 개막하는 '조선왕실의 생로병사-질병에 맞서다'전(展)에서 영조의 친필이 새겨진 두 개의 각석(刻石·글자나 무늬 등을 새긴 돌)을 볼 수 있다. 고궁박물관이 개관 50주년을 맞은 한독의약박물관(관장 이경록)과 공동으로 기획한 전시다. 조선 왕실이 마주한 질병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치료했는지, 무병장수에 대한 염원은 어떤 형태로 나타났는지를 유물로 펼쳐 보인다.

'상약국(尙藥局)'이라는 글자가 상감된 뚜껑이 있는 12세기 청자 약합(藥盒·보물 제646호)은 고려시대 의술을 보여주는 귀한 자료다. 상약국은 고려 왕실의 의약을 담당하던 의료기관으로, 이 약합은 환약을 보관하던 용기로 추정된다. 태조 이성계의 탯줄과 태반을 넣었던 태항아리, 1879년 왕세자(순조)의 천연두 회복 축하 의식을 담은 병풍, 사망 직전 격열(膈熱·횡격막에 열이 많은 증상)에 시달리던 정조가 쓴 편지글도 나왔다. 독약을 넣지 못하게 은(銀) 자물쇠를 부착한 왕실용 백자 주전자도 흥미롭다.

전시는 조선 왕실의 의료와 생로병사에 중심을 두면서 '알렌이 사용했던 의료 기구' 등 전근대 의료 변천사까지 소개한다. 9월 14일까지. (02)3701-76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