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성 자산 많은 기업 27곳, 배당 압력 높아질 듯

정부의 새 경제팀이 가계 가처분소득 증대를 위해 기업의 배당 확대를 유도할 방침을 시사하자 증시에선 어떤 기업이 배당을 늘릴 가능성이 큰 지 긴급 점검에 나섰다.

주요 증권사들은 앞으로 1~2년 안에 배당을 획기적으로 늘릴 가능성이 큰 기업으로 ▲대기업 계열사이면서 ▲내부 유보율과 현금성 자산 비중이 높고 ▲대주주 지분율이 이미 높거나 향후 지배 구조 개편 과정에서 높아질 가능성이 큰 곳을 '후보군'으로 꼽고 있다.

특히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회사 중 최근 배당수익률이 극히 낮았던 기업이 단기간 내 배당을 늘릴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되고 있다.

◇현금성 자산 많은 대기업 주목

삼성증권이 자사가 '매수' 추천하는 종목군(群)에 속한 180개 기업 중 위의 기준에 맞는 곳을 꼽았더니 총 27개 종목이 뽑혔다. 최근 3년간 평균 배당수익률이 0.2%로 '바닥' 수준인 롯데칠성과 롯데제과는 현금성 자산이 자본금 대비 2000%를 넘나들 정도로 상당한 현금을 쌓아두고 있어 정부의 고배당 정책이 도입되면 가장 큰 압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됐다. 이 회사들은 자본금 대비 이익잉여금의 비율인 내부 유보율도 2만%가 넘어 국내 주요 기업 중 최고 수준이다. 대표적인 짠물 배당 기업인 롯데 계열사들은 시가총액도 1조원 이상이어서 개인뿐만 아니라 기관투자자 입장에서도 물량 부족을 걱정하지 않고 대거 매집할 가능성이 점쳐졌다.

현금성 자산 비중이 높은 걸로 따지자면 현대글로비스가 배당 압력을 가장 크게 받을 곳으로 꼽힌다. 현금성 자산 비율이 3890%에 달하는데 배당수익률은 0.7%에 불과하다.현대차그룹의 후계자인 정의선 부회장이 최대 주주로 앞으로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정 부회장의 '현금 창고'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큰 만큼 대주주 입장에서도 배당수익률을 높여 현금을 더 받아가는 게 유리하다.

삼성전자와 제일기획, SK와 SK이노베이션 등 4대 그룹 핵심 회사들도 이런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 삼성증권 유승민 투자전략팀 이사는 "상장사 중 현금을 많이 쌓아두고 있으면서 배당을 적게 하는 곳을 꼽아보면 공교롭게도 주요 대기업 핵심 회사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대만 사례에서 힌트를 얻을 수도 있다. 대만은 납입자본금 한도를 초과해 이익금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 초과한 이익금에 대해 10%의 추가 법인세(1회 한도)를 물리는 제도를 1998년 도입했는데, 이후 주요 IT 기업들이 배당을 많이 늘렸다. IT업종이 타업종 대비 경기 변동성이 커서 사내 유보금이 많았는데, 글로벌 IT 기업들의 고배당 흐름 속에서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배당을 늘렸기 때문이다. 초과 유보금 과세 이전에는 평균 1.0%에 불과했던 대만의 배당수익률이 2.6%까지 높아졌다. 우리나라 대표 IT 기업인 삼성전자도 외국 투자자들로부터 1.0% 수준인 현금 배당률을 획기적으로 높이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배당 1%P 올라가면 가계소득 13조 늘어난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상장사들이 배당으로 푼 돈은 총 13조8173억원. 이 중에는 외국인 투자자가 가져간 돈(약 38%)과 기관투자자들 몫도 포함돼 있다. 개인에게 돌아간 돈은 약 절반 수준으로 추정된다. 올해 시가총액이 작년과 같고, 배당수익률만 현재 1.0%에서 2.0%로 오른다면 개인에게 돌아갈 돈이 13조원 늘어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우리나라 명목 GDP(국내총생산)의 1% 수준이자 지난해 추경(총 17조3000억원) 중 순수하게 경기 부양을 위해 배정한 세출 확대 규모(5조3000억원)를 2배 웃도는 금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