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신중해서 때론 속병 앓는 당신에게

오늘의 한국 문학에서 신중한 글쓰기로 이름이 높은 작가 이승우〈사진〉가 소설집 '신중한 사람'(문학과 지성사)을 냈다. 지난해 장편 '지상의 노래'로 동인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 '칼'을 비롯한 단편 8편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승우 소설은 사건의 숨 가쁜 연속이 아니라 특정 상황에 맞닥뜨린 인물의 사색과 번뇌를 세밀하게 펼쳐 놓는다. 작가는 "생각을 많이 하느라 행동하지도 즐기지도 못하는 내 인물들을 보면 언짢고 속이 상한다"고 털어놓기도 한다.

이번 소설집은 억지와 불합리와 막무가내가 법과 제도와 상식을 압도하는 우리 시대의 풍속도를 반영했다. 표제작이 된 단편 '신중한 사람'은 중년의 소시민 Y가 신중하고 소심한 성격 탓에 겪게 되는 부조리한 상황을 들려줬다.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던 Y는 정년을 앞두고 틈틈이 모은 돈으로 전원주택을 가꾸며 은퇴 이후 행복을 키워왔다. Y는 타인과 부딪치지 않고 현상을 유지하면서 신중하게 살고 싶기 때문에 때때로 비겁하게 물러나는 걸 꺼리지 않았다. 그는 회사에서 원치 않는 해외 발령을 내도 묵묵히 수락했다. 그는 3년 동안 전원주택을 관리해달라고 유난히 친절한 시골 이웃에게 돈을 주고 맡겼다. 3년 뒤 Y는 해외에 남기를 원하는 아내와 딸의 뜻을 신중하게 존중해 홀로 귀국해선 전원주택을 찾아갔다. 그런데 시골 이웃은 낯선 사람에게 맘대로 전세를 놓고 사라져버렸다. 세입자는 전세금을 내놓지 않으면 못 나간다고 버텼다. 집주인 Y는 억울하지만 신중하게 생각한 끝에 자기 집에 하루에 만 원씩 내고 사는 세입자가 됐다.

이승우 소설은 감정이 절제된 언어로 Y의 황당무계한 처지를 건조하게 묘사한다. Y는 분노로 속병까지 나지만 작가는 끝까지 냉정하게 그려낸다. 불합리한 소설 속 상황과 합리적인 작가의 관찰이 뒤섞이면서 쓴웃음을 짓게 한다. 더구나 신중한 Y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서서히 수긍하고 순응한다. 소설은 소극(笑劇)이길 그치고 씁쓸한 비극의 여운을 남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유(思惟)의 언어를 즐길 독자가 더위를 쫓으려고 펼칠 소설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