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와 한가득 손에 잡혔던 검은 비닐봉지를 털썩 내려놓으니 뭉게뭉게 쌓여져 있던 상추들이 하나 둘 흩어진다. “빨리 좀 따요. 다른 사람들이 다 따기 전에….” 하며 재촉하던 그의 목소리가 아직 귓가에 남아있다. 찾아온 손님의 두 손은 절대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는다는 그의 말이 참으로 정겨웠던 탓이리라.
그 날 저녁,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상추쌈을 먹어보았다. 크고 싱싱한 상추에는 별다른 반찬이 필요 없었다. 그저, 봉지가 넘칠 때까지 상추를 담아주는 그의 손길만 생각하면 되었다.
어쩜 이리 작고 예쁜지
그저 땅 위에서 나는 작물이 신기했고 예뻤다. 어쩜 이리 작고 귀여운 것이 생명을 안고 불쑥 올라오는 걸까. 자꾸 궁금하고 생각이 났다.
김현씨에게 어머니의 밭은 고향이었고, 그리움이었다. 한나절 있다 돌아가면, 한 달은 그것에 대한 기억으로 버틸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어머니의 밭은 그에게 살아가는 힘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건축업으로 살아가는 도시에서의 하루하루는 그럭저럭 즐거웠다. 주말마다 내려가던 어머니의 텃밭은 삶의 소소한 낙이었다. 햇빛과 바람, 얼마만큼의 노력과 정성을 보이면 땅 위의 싹은 금세 싹을 돋아냈다.
마냥 예쁘기만 했다. 예쁜 것이 자꾸 마음을 흔들었다. 그것들과 함께 새로운 생을 살아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 삶을 떠올려보니 가슴이 벅차고 설레기 시작했다. 보다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할 것 같아 우선, 약초에 관련된 정보를 하나하나 터득하고 배우기 시작했다. 정보력을 앞세워 여러 가지를 공부하다 보니 농촌으로 가야겠다는 결심이 부쩍 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3년. 목표가 있으니 준비과정은 흥미로움과 즐거움 그 자체였다.
창업자금지원사업이 있어 든든
2011년, 김현씨는 고향 김제로 돌아왔다. 준비 과정 중 여러 귀농관련 교육을 통해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지원하는 ‘창업자금지원사업’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상추를 재배작물로 삼고 여러 시설을 마련해야 하는 그에게 ‘창업자금지원사업’은 하늘이 주신 기회라 생각했다. 사업신청부터 대상자로 확정되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내내 즐겁고 행복했다. 잘 될 것이라는, 할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창업자금지원사업’은 삶의 방향을 농촌으로 바꿔, 귀농귀촌행렬에 몸과 마음을 담은 이들을 위해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원하는 제도이다. 지원대상자는 귀농귀촌 교육을 100시간 이수하고, 귀농한지 3년 이내의 귀농귀촌자에 해당하며, '연 3%, 5년거치, 10년 균등상환'의 내용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 제도이다. 먼저 어떤 작물을 재배할 것인지를 결정하고, 농협이나 축협에 제공할 담보물건(아파트나 보증인 등)을 확보해 사업신청서를 작성하면 된다. 단, 주택이나 땅, 축사, 농기계 등을 당사자가 구입하면 귀농자금은 받을 수가 없다. 금액은 한 세대 당 2억원 한도 이내로, 귀농 후 5년 이내면 2회의 신청이 가능하다.
김현씨는 이 창업자금을 활용해 시설상추(베드재배) 5동을 설치하고 4,099㎡의 공간에서 하루 65박스(4kg/1일) 생산, 평균 52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특히 새로운 첨단농업기술로 손꼽히는 융․복합 정밀콘테이너 LED 조명을 활용한 공정육모시스템을 도입해 20여일 만에 튼튼한 육묘를 생산하면서, 아직 귀농 4년차밖에 안 됐지만 수십여년 동안 농사지은 기존 농가보다 더 빠르게 김제의 선도농가로 손꼽히고 있다.
어화둥둥 내 사랑 상추
김현씨에게 상추는 자식이기도, 가족이기도 하다. 김현씨가 재배하는 상추는, 꼭 그를 닮았다. 그가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그의 상추는 싱싱하고 밝았다. 친환경으로 키우는 그의 상추는 파는 양보다 주는 양이 더 많다. 지나다 잠깐 들른 누군가에게도 시원한 음료 한 잔과 봉지 한가득 상추를 넣어 꾸역꾸역 손에 들려준다.
“제가 처음 상추를 시작한 마음만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리고 작은 잎들이 마냥 예뻤어요. 그 조그만 잎들을 하나하나 따서, 바구니에 담을 때가 가장 기분이 좋습니다. 제가 정성으로 키운 상추들이 누군가의 몸에 도움이 되고, 누군가의 입을 즐겁게 해 준다는 자체로도 행복하지요.
저희 하우스에는 매일매일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가까운 이웃들은 일을 하다 지치거나 힘들 때, 저희 하우스에 밥을 먹으러 오지요. 아무런 반찬이 없어도 상추와 쌈장만 있으면 고픈 배와 마음을 두둑하게 채울 수 있으니까요. 상추는 그런 제 마음을 잘 알아줍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 주고 싶은 마음을 상추가 대신 해 주니까요.“
상추에 대한 확고한 의지는 농촌에서의 그의 삶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다. 상추를 중심으로 그가 찾은 삶의 새로운 가치는 ‘건강한 삶을 잘 지켜내는 것’이다. 애정을 준만큼 무럭무럭 자라는 상추처럼 그의 하우스에는 언제나 웃음꽃이 핀다.
앞으로 김현씨는 장류사업도 계획하고 있다. 우리 고유의 맛인 장류의 깊은 맛을 살려 발효주를 만들어 볼 참이다. 그러면 지인들과 나눌 수 있는 게 더 많아질 거라며 환히 웃는 그의 미소가 한여름 무더위를 한 번에 날릴 듯 하다.
자료제공·전라북도 귀농귀촌 지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