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뮤지컬 <프리실라>를 보고

뮤지컬을 봤다. 70년대 노룬산에서 약장수의 공연을 본 거 말고는 별다른 라이브 문화생활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연극도 본 것도 같은 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역삼동의 LG 아트센터를 찾는다. 거기서 프리실라를 공연한다.

입장은 공연이 시작하기 전 30분간 이뤄진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갔었는데 이게 불찰이다. 이미 일은 저질러졌고, 수습하려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에 마른번개 치듯 한다. 결론은 매몰 비용을 버리지 못하고, 끝까지 다 보고 나왔다.

뮤지컬의 제목은 프리실라다. 세 명의 사람이 호주의 시드니에서 앨리스로 버스를 타고 함께 공연을 떠나는 도중에 겪는 여러 가지 곡절을 겪는다. 이들은 문화적으로 특별한 경우다. 화려한 의상이 무대를 순식간에 바꿔 놓기도 한다. 무대 위의 버스는 김연아의 스케이팅처럼 달려가기도 하고, 선회하기도 한다. 세 명의 사람 중에 유명 배우도 있다. 조성하 씨가 늙은 변성자(變性者) 역을 맡았다.

가수 조권도 여행용 버스를 사줄 정도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부자 엄마를 가진 어떤 젊은 변성자 역을 맡는다. 하늘에서 세 명의 우주인 같기도 하고, 천사 같기도 하고, 하얀 깃털의 작은 날개로 하늘을 나는 듯한 여성들의 노랫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아트센터의 객석을 향해 울리기도 한다.

상상 가능한 익숙한 문화적 학대와 천대하는 욕설을 무대 위의 그곳 세상에서 이들은 받는다. 가령 이들의 신체적 정체를 알고는 주먹질을 직접 행사한 사람도 있다. 정체를 알기 전에 조권을 따르던 무리들이 사실을 알고부터는 조권을 집단으로 추적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들 삼 인의 사회적 이방인들의 버스는 아직 앨리스에 가려면 6일의 시간이 더 걸렸다. 호주 대륙의 중심이 앨리스라면 시드니에서의 여정은 대륙의 반지름을 가는 길이의 긴 경로다. 추적자들이 추종자인 순간에 이들이 탄 버스는 연기와 소음을 동반하며 고장이 난다. 거친 광야의 길을 가다가 먼지와 험로의 조건 속에서 3명의 운명의 버스는 고장이 나고 만 것이다.

추적자들을 만나기 전에 3인의 변성자들은 한 베트남전 참전 군인을 만난다. 그는 버스 수리를 위해 연락이 닿은 늙은 수리공이었다. 그는 조성하가 연기한 버니시스터스의 멤버였다. 월남전 공연이 나오면서 분홍빛의 무희들이 무대 양쪽에서 무대 중앙으로 연결된 계단을 내려오며 공연을 펼치는 추억이 회상된다. 늙은 수리공과 역시 세월이 묻은 버니시스터스는 이 기억을 공유한다.

수리공은 아내가 있었다. 아내는 버니시스터스를 위해 동네 사람을 모은 수리공을 비웃듯 무대를 종횡무진 한다. 이는 늙은 수리공이 추억을 위해 모은 목적이 아니었다. 수리공은 버니시스터스에게 자신도 공연에 따라가겠다고 한다. 이에 버니시스터스는 반기며 두 사람은 따로 버스 밖의 공간에서 샴페인을 마시며, 밤을 보낸다.

중간중간 코믹한 무대 장치도 있다. 도로를 달리다 캥거루랑 불운한 조우를 해 보내기도 하고, 코알라도 도로에서 눈이 X자가 되어 황천길로 가기도 하고, 텔레토비 조심 교통 표지판에 보라색 텔레토비도 저 멀리 차의 반대방향으로 사라진다.

3인 중의 한 명은 앨리스로 나머지 두 명을 인도한다. 그는 부인이 있었고, 어린 아들도 있었다. 앨리스에 도착한 이들은 변성자 공연을 한다. 화려한 불빛과 채색이 짙고 다양한 의상의 도열이 모두 끝난 짙은 검은 색 무대 이면에서 그는 그녀로의 모습으로 아들에게 목도된다. 부인과 아들을 만난 뒤 아버지로서의 그는 새로운 삶을 잠시 만난다.

뮤지컬 객석은 꽉 찼다. 양복을 점잖게 입은 노부부들도 상당수 무대 바로 앞에 있었다. 무대 정중앙은 공연이 끝날 무렵에 공연에 압도된 세련된 장년의 여성들이 기립 박수를 보낸다. 객석에서 남성들은 희귀 생물체였다. 거의 전 객석이 여성이 압도적이었다.

무대 개막에서 젊은 남성 배우들의 파워 있는 춤동작과 중간에 주역 3인 외의 다른 남성 배우 4인방의 나신에 근접한 춤 동작에서는 무대가 순간 얼어붙듯 조용해졌다. 나 역시 어린 아들에게 뮤지컬을 보여주러 데려온 순간이라 연변식으로 좀 당황했었다.

LG 아트센터는 매우 장엄한 무대였다. 아주 기능적이고, 편안했다. 무대와 객석은 물 흐르듯 디자인된 불이(不二)의 배열 속에 담겨져 있다. 무대로 객석의 의식이 물 흐르듯 흐른다. 무대에서 객석으로 다시 이안류가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