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마다 반복되는 절기와 날씨처럼 부모의 자식 사랑도 세대를 두고 반복된다. 여름날의 소나기처럼 시원하게 우리 마음을 흠뻑 적시는 그 옛날의 추억 속으로.
정확하게 오늘 오후 2시 35분에 천둥이 시작하더니 이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소나기인데 엄청난 소나기였다. 하늘에 구멍이 났음에 틀림이 없다. 일산이다. 큰손자 아이가 오후 2시 50분에 수업이 끝난다. 초등학교 1학년이고 평소에는 수업이 오후 12시 40분에 끝나지만, 오늘은 특별활동 시간이 있는 날이다.
아직은 어리고 학교가 큰길가에 있어 오전 오후 데려다주고 데리고 온다. 벌써 남편은 나가서 정문 앞 맞은편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다. 예전에 시어머님이 하셨던 것 처럼. 전화해서 우산을 가지고 갈 것이라 말하고 우산을 하나 쓰고 둘을 갖고 나섰다.
아파트의 비탈진 곳에서는 위에서 쏟아지는 빗물이 철철 흘러나왔다. 물이 발목과 종아리를 때리며 아래로 흘러갔다. 떨어지는 비에 우산이 안으로 접혀 고깔 같았다. 양동이로 위에서 물을 퍼붓는 듯했다. 우산을 펼 수가 없었다. 온몸은 금세 다 젖었다. 이렇게 거의 40분 동안 쏟아졌다. 순간 우리 아이가 20여 년 전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소나기가 왔던 여름날이 생각났다. 아이가 올 때쯤 비가 쏟아졌다. 시어머님이 굳이 우산을 갖다주러 가시겠단다.
그 당시 시어머님은 손자 아이들이 학교 갈 때 대문 앞에서 배웅하고, 돌아올 때 대문 앞에서 맞이하는 걸 큰 낙으로 여기셨다.
걱정은 됐지만 길도 아시고, 매일 반복하셨던 일이기에 그러시라 했다. 이내 비가 쏟아졌다. 오늘처럼. 좀 있으니 아이가 가방을 가슴에 안고 온몸이 흠뻑 젖은 채 들어왔다.
“이런! 할머니는?”
“아니, 못 만났는데….”
나와 아이는 다시 그 쏟아지는 빗속으로 할머니를 찾으러 나섰다. 학교 앞으로 갔다. 안 계셨다. 다시 집으로 왔다. 집에도 안 오셨다. 큰일이 났다. 비는 쏟아져 앞이 안 보였다. 집을 몇 번이고 왔다 갔다 하고 남편 회사에도 전화하고 야단이 났었다. 할 수 없이 신고하려고 집에서 한참 떨어진 파출소에 갔다. 아니 글쎄 그곳에서 온몸이 다 젖은 시어머님이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계신 게 아닌가. 쪽머리 비녀는 어디로 갔는지 안 보이고 머리가 눈을 가리고 모시 적삼과 치마가 다 젖고 속 고쟁이가 다 비쳐 마치 물속에서 금방 나온 듯한 모습이었다.
순경이 나를 맞이하며 아이 할머니냐고 물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니 시어머님은 우산으로 앞을 가리고 한없이 앞으로만 가신 것이다. 큰길가의 학교도 지나치고. 지나가던 순찰차가 빗속을 다니는 할머니가 치매에 걸려 집을 나오신 줄 알았다 했다.
의자에 앉아 바르르 떨고 계시던 시어머님은 그래도 손자 아이를 보더니 “아이고 우리 손자 비 다 맞았네” 하시며 젖은 치마를 걷어 아이의 머리를 닦아주셨던 기억이 났다. 이렇게 시어머님의 손자에 대한 사랑은 무한하셨다.
큰길가에 버스가 지나가니 물이 튀어 젖은 옷을 더 적셨다. 덤벙거리며 급히 가니 남편은 좁은 버스 정류장에서 예전 시어머님처럼 떨고 있었다. 우산을 건네주고 학교 안으로 들어가니 손자 아이는 우산을 받자마자 신나게 빗속으로 들어가 텀벙거렸다. 쏟아지는 비가 신기하고 신이 났나 보다.
집에 오니 세 사람의 몸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렇게 쏟아지던 소나기가 그치니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은 맑고 햇빛이 난다. 이렇게 갑자기 쏟아지는 여름날의 소나기는 추억 속에 또 추억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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