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넓은 곳 가서 많은 사람 만나길"

"좁은 데 있는 것보단 넓은 곳에 가서 숨 쉬는 게 낫지 않겠어요? 사람들도 더 많이 만나고…."

김달진(59) 김달진미술연구소 소장은 애지중지하던 자식을 떠나보내는 양 말했다. 김 소장은 40여년간 발품 팔아 모은 미술 서적·도록·팸플릿 2만여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키로 하고, 30일 서울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협약식을 맺었다. 개인 자격으로 이렇게 많은 양의 미술 자료를 기증한 것은 이례적이다. 기증 자료 중엔 1926년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보통학교 도화첩, 1956년 미술잡지 '신미술' 창간호 등이 포함됐다.

김 소장은 미술 바닥에선 '인간 자료실'로 통하는 유명 인사다. "고등학생이던 1972년에 경복궁에서 열린 '한국근대미술 60년' 전시회를 봤는데 박수근·이중섭 등 몇몇만 빼곤 우리 작가 정보가 거의 없었어요. '모나리자' 같은 걸 스크랩할 때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요." 고교 졸업 직후 쇼핑백 달랑 들고 인사동 화랑가, 청계천 고서점가를 돌며 한국 미술 자료를 닥치는 대로 그러모았다. 특유의 바지런함과 꼼꼼함 덕에 자료는 나날이 쌓여갔다. 이 자료를 밑천으로 월간 '전시계'와 국립현대미술관을 거쳐 가나아트센터 자료실장을 맡았었다.

그는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학술 연구를 하기 위해 2001년 서울 창전동에 김달진미술연구소를 열었다. 2008년엔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도 열었다. 2010년엔 그동안 모은 자료를 일반인들이 무료 열람할 수 있도록 한국미술정보센터를 만들었다.

김 소장이 분신같이 여기던 소중한 자료를 내놓게 된 것은 한국미술정보센터가 9월 말 문을 닫게 됐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센터 건립 당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예술전용공간임차지원사업'으로 8억여원을 지원받았다. 그런데 이 지원이 9월 말 중단돼 이 돈을 정부에 반환해야 한다.

"센터가 소장하던 18t 분량의 자료가 길바닥에 갑자기 나앉게 된 상황이 온 거죠. 이리저리 뛰며 방편을 찾아봤지만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고심 끝에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국립현대미술관은 기증받은 자료를 정리한 뒤 서울관 디지털정보실을 통해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