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戰場이 피자집으로… 역사의 이 야릇한 농담"

"우리는 용병이 아니라 용사였다."

1965년 맹호부대 장교로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방송 작가 김광휘(73)씨. 라디오 다큐 드라마 '격동 50년' 작가로 이름을 날렸던 김씨는 "궁핍했고 가난했던 시절에 우리 국군은 월남에서 아군과 미군의 대포 탄피를 모두 수거해 한국으로 보냈고, 그게 포항제철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그가 베트남전 발발 50주년을 맞아 장편소설 '귀인'을 냈다.

1964년 8월 2일 베트남전이 터졌고, 9월에 한국군 파병이 시작됐다. 이동외과병원 의무병 130명과 태권도 교관 10명으로 구성된 비전투 병력을 보냈다. 이듬해 9월 맹호부대와 청룡부대가 전투 병력으론 처음 파견됐다.

김광휘씨는 "ROTC 2기였던 나는 맹호부대에 파견돼 포병 관측장교로 1년 6개월 복무했다"고 회상했다. 장세동 대위가 지휘한 중대에서 생사를 함께 넘나들었다고 한다. 김씨는 장세동 대위를 '군인으로선 100점'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탈고한 뒤 책을 장씨에게도 보냈다. "한국군이 베트남 양민들에게 한 몹쓸 짓까지 쓴 것을 놓고 그분이 화를 내더라. 나머지 병사들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는 군인으로서 나라가 시킨 대로 참전했다. 그러나 개인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죄의식을 갖고, 그 땅에 각자 고개를 숙여야 한다."

소설 '귀인'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지역 '뀌뇽(歸仁)'을 40년 만에 단체로 방문한 참전 용사들을 중심으로 베트남의 현재와 과거가 중첩되는 구조로 짜여 있다. 작가의 체험과 허구가 절반씩이라고 한다. 그는 "불과 50년 전만 해도 수많은 한국군이 목숨을 걸고 싸웠던 곳에서 한국인들이 사업을 하면서 베트남 경제 발전을 돕는다는 게 어찌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이자 야릇한 농담"이라며 "도대체 우리는 왜 그토록 부패했던 월남 정권을 위해 싸워야 했던가"라고 묻고 있다.

'귀인'에선 베트남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허망한 심정이 짙게 그려졌다. 이념과 국익을 걸고 숱한 젊은이가 피를 흘린 베트남 격전지가 오늘날 흥청망청하는 피자집으로 바뀐 풍경 앞에서 참전 용사들이 할 말을 잃는 것이다.

김씨는 "이 소설에서 아군이 포사격 연습을 하다가 베트남 어린이들이 죽은 사고는 나 자신의 실수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괴로웠다"고 했다. 김씨는 베트남을 잊고 있다가 1992년 처음으로 다시 갔다. 그는 "미군이 고엽제 폭탄을 투하한 곳을 가보니 땅이 전부 시뻘게졌더라. 베트남에 차마 못 할 짓을 했더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미군 장교와 병사들은 용감했다"고 회상했다. "미군 부상병은 구조될 때까지 참으며 기다리는데, 우리 군은 분대원 중 한 명이 총에 맞으면 전부 거기로 달려가서 전투력이 분산되곤 했다. 미군은 선임자가 늘 앞장서다 가장 많이 전사했다."

김씨는 "베트남 사람들은 강대국들을 다 물리친 대단한 민족이고, 월맹군은 호찌민 루트를 통해 침투할 때마다 병력의 30%를 잃으면서도 끝내 승리했다"고 평가했다. 김씨는 군인으로서 아군과 적군은 구별하지만 참된 군인의 평가에는 피아(彼我)를 가리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전쟁은 결코 일어나선 안 된다"며 "전쟁이 나면 병사들보다 여자와 어린이, 노약자가 더 많이 죽기 때문에 어떤 전쟁이든 정당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