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한국 문학 출판의 새 트렌드다. 한국 SF의 샛별로 꼽히는 작가 배명훈이 중편 한 편만으로 만든 123쪽짜리 소설책 '가마틀 스타일'(은행나무)을 냈다. 시인 박후기는 짧은 잠언에 직접 그린 삽화 53점을 곁들인 책 '그림 약국'(가쎄)을 내놓았다. SNS에서 활동해 온 작가 장주원의 '초(超)단편소설'을 모은 책 'ㅋㅋㅋ'(문학세계)도 눈길을 끈다.
배명훈의 '가마틀 스타일'은 로봇의 자아 찾기를 다룬다. 엉뚱하면서도 심각한 주제를 경쾌하게 그린다. 전투형 로봇 '가마틀'이 탈영하면서 시작한다. 사람들이 로봇에 의한 인류 멸망론을 두려워한다. 반면에 '가마틀'이 평화를 사랑하는 로봇이란 옹호론도 있다. '인공지능을 지닌 로봇이 인류를 지배한다'거나 '로봇도 사람처럼 마음이 있다'는 설정은 지금껏 SF의 단골 메뉴였다. 그런데 '가마틀 스타일'은 그런 이분법의 경계를 가볍게 허문다. 유쾌한 반전(反轉)으로 한방에 무더위를 날리는 중편소설이다.
시인 박후기는 "그리운 마음을 그려서 드러내 보이는 것이 그림이라고 한다면, 그림의 질료는 단연코 사랑"이라고 한다. 그는 책 '그림 약국'에서 사랑의 '이모티콘' 같은 그림으로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그의 글은 짧기만 하다. 연인을 옷핀처럼 그린 뒤 '옷핀 같은 너'란 시적(詩的) 산문을 곁들이는 식이다. "때론 세파에 시달리며 찢긴 나의 마음을 꿰매어주기도 하고, 때론 나의 가슴에 환한 꽃을 달아주기도 하는 너." '나는 너다'란 글도 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사랑은 반복"이라고 하지만 "반복이 지겨울 때가 오는데, 그것은 이미 내 안에 사랑이 없기 때문"이라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사랑의 더위에 지친 연인끼리 읽을 책이다.
장주원의 소설집 'ㅋㅋㅋ'는 세태 풍자와 인간 존재에 대한 촌평(寸評) 같은 이야기 모음집이다. 만화가 변병준의 삽화도 곁들였다. 수록작 69편 중 '배트맨 혹은 어느 강남 좌파의 초상'은 보수와 진보를 박쥐처럼 오가는 강남 좌파의 고백이다. 부유층의 젊은이가 남들 앞에서 보수 정권과 언론을 비판하길 좋아한다. 이렇게 하면 사회적 부채감(負債感)을 줄이고 유명해지기 때문이다. 백만장자인 남자가 배트맨 가면을 쓰고 약한 이들을 돕는 영화 구조와 비슷하다. 그러나 강남 좌파는 배트맨 가면을 벗기만 하면 철저하게 배트맨을 잊고 강남 우파로 산다. 'ㅋㅋㅋ'는 정자(精子)가 인간 되기를 선택하는 '소설'을 비롯해 독자들을 연신 킥킥거리게 하는 이야기를 쉼없이 늘어놓는 입심을 과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