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매미 소리

거실 창 너머로 들려오는 요란한 매미 소리에 이끌리어 거실 창 앞에 섰다. 칠월의 장마가 끝난 하늘은 더없이 맑다. 구름 몇 점 흘러가는 사이로 낮달이 떠 있다. 지칠 줄 모르는 매미소리는 연신 하늘과 땅 사이를 오가며 여름날 오후의 고요를 흔들어 놓고 있다.
 
매미소리가 요란하면 요란할수록 어디서 나타났는지 잠자리 떼가 하늘과 땅 사이를 파고든다. 숲은 말 그대로 침묵 속이다. 잔바람에도 일렁이며 반짝이는 이파리로, 날 불러내곤 하던 미루나무도 오늘은 움직임이 없다. 모두들 매미들이 부르는 노랫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 것일까? 맴맴 매엠엠~~~ 맴맴.

과연 이 소리가 표현에 맞는지 어쩌는지는 모르겠지만, 개굴거리며 밤마다 울어대던 개구리 소리가 사라지고 나니 요즘은 동트기가 무섭게 매미가 울어 댄다. 물론 비가 오는 날이면 가끔 우는 개구리도 있지만 매미가 본격적으로 울기 시작하면 그 우렁찬 매미소리에 기가 질렸는지 개구리 울음 소리는 조용히 사라지고 깊은 여름 속으로 든다. 내 귀에 매미소리는 그저 맴맴 매엠엠~~~ 맴맴 거리는 소리뿐이다.

다른 사람들에겐 매미의 종류에 따라 그 울음소리가 달리 들린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참매미는 맴맴 매엠엠~~~ 맴맴 거리는 리듬을 가진 전형적인 울음소리고, 말매미는 찌 -------- 하고 리듬 없이 울어 그야말로 수십 수백 마리가 동시에 울어대면 소음으로 들릴 지경이다. 쓰름쓰름쓰름쓰름 하고 우는 녀석은 쓰름매미요, 쓰크쓰크쓰크흐 시--- 쓰크쓰크쓰크흐 시 --하고 우는 것은 털매미라는데 나에겐 그저 다 맴맴 매엠엠~~~ 맴맴하는 리듬으로 들릴 뿐이다.

맴맴 매엠엠~~~맴맴 거리는 매미소리를 듣자 하면 묘한 리듬감이 느껴진다. 마음을 다 비운 오늘 같은 날 가만히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면 저 가슴 밑바닥부터 가슴이 짠해 오는 건, 매미가 7년이라는 긴 기다림 끝에 부르는 승리의 노랫소리인지, 아님 7일 동안 살고 끝내는 생의 그 짧음을 한탄하는 노랫소리이기 때문인지 나는 아직 어느 쪽이고 결론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매미소리는 나에겐 즐거운 노랫소리다. 장마가 끝난 폭염 속에 이 매미소리마저 들리지 않는다면 이 여름이 얼마나 덥고 짜증나겠는가! 폭염 속에 느닷없이 울리는 매미들의 합창 소리에, 무더위와 짜증, 이글거리는 햇살까지 한순간에 청량하게 바꿀 수 있는 이 매미 소리야말로 여름을 이기는 최고의 청량제다.

요즘은 아침마다 매미 소리에 잠을 깬다. 동틀 무렵부터 울어대는 매미 소리에 절로 눈이 뜨인다. 일어나 거실 창 앞에 서면 저 멀리 미루나무가 보이고 그 미루나무 이파리마다에서, 고향집 풍경이 일렁인다. 아직 젊은 어머니는 이마의 땀을 연신 훔치며, 강판에 굵은 감자를 벅벅 갈아서 크고 둥근 프라이팬에 부치며 ‘얼른 먹어라, 식으면 맛없다’ 하시며 우리 형제들에게 하나라도 더 먹이려 애를 쓰신다. 우리는 어머니가 한 점 드셨는지 안 드셨는지는 안중에 없었다. 그저 부쳐지는 감자전을 게 눈 감추듯 먹곤 했다.

결혼해서 서울로 와 살면서 많은 것을 잊고 살았다. 지금 들리는 저 매미 소리뿐만 아니라 산등성에 노을 지는 모습, 여름밤 들리던 개구리 소리, 봄이 가는 것을 알리던 뻐꾹새 소리, 후드득후드득 감나무 잎에 떨어지던 빗소리며...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는 것들을 나는 십여 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 많은 것을 되찾고 산다.
 
겨울에 산야에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펑펑 내리던 눈 내리던 고향 풍경을 만났고, 봄이 오는 신호탄으로 쏘아 올리던 생강나무꽃을 만났고, 늦은 봄, 숲에서 울던 뻐꾸기 소리며, 나른한 오후 들리는 매미 소리를 만났다, 어디 그뿐인가! 가을밤이면 들리던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까지 찾았으니.... 이 모든 것들이 내게는 묘한 여운을 주며 내 삶을 한층 풍요로워지게 했다.

물론 누군가 매미 소리가 무슨 여운을 남기고 삶을 풍요롭게 하느냐고, 시끄러워 살기 힘들다고 말을 하면 할 말이 없겠지만, 마음을 다 비워내고 조용히 눈을 감고 앉아, 내 가슴 속 깊은 곳에 매미 소리를 집어넣으면 그 소리에는 우리나라 한 오백년 노랫가락 같은 한이 들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삶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얘기하지만, 그 삶을, 노랫소리로 승화시키는 것 같은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한때 젊은 시절, 나는 내가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다른 사람들은 다 행복하게 원하는 삶을 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세상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때 배운 것이 노래였다. 나는 절대 음감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거의 음치에 가까운 나는 노래를 부를 줄 몰랐다. 노래 부르는 자리에 서면 주눅이 들어 그 자리를 피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주변 몇 사람과 노래방에 다니기 시작했다. 부르고 또 부르면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하나둘 늘어 갔고. 그러면서 부정적인 사고에서 긍정적인 사고를 하기 시작한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아마도 노래를 부르면서 마음속 응어리들이 하나둘 치유된 것 같았다.

매미 소리는 내겐 치유의 소리다. 가만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매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매미 소리는 점점 가슴 깊숙이 파고 들어가 생각은 생각을 낳아간다.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내가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무엇인지 나를 찾아 떠나는 길로 유도하여 끝내는 나의 상처를 발견하고 어루만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