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잊지 못할 휴가] 태초의 원시림 속에서 일상의 티끌을 떨쳐내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사진가에게도 휴가가 있나? 휴가가 있다면 카메라를 지니고 가느냐?

직업이 직업인 만큼 인생 자체가 휴가라면 휴가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해에는 1년의 3분의 2를 해외에서 촬영하며 보낼 때도 있고, 한 달에 무려 8개국을 카메라와 함께 여행한 적도 있습니다. 마치 여행사에서 광고하는 배낭여행이나 웬만한 유럽 일주 여행 상품 못지않은 일정이지요. 물론 일과 휴가는 다르지만, 아무려면 여행 중에 일만 하다 오겠습니까. 장거리 여행 중에는 비행기 안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계획하는 습관도 생겼습니다. 동트는 새벽 명상을 즐기기 참 좋은 곳이 바로 비행기 창가이지요.

정신없이 여행을 하다 보니 오롯한 휴가의 의미가 다소 퇴색되는 것 같습니다만, 저에게도 꼭꼭 숨겨놓은 휴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그곳은 우리나라와 계절이 정반대여서 좋습니다. 미리 가보는 계절이랄까. 그곳은 사람이 적어 좋습니다. 아무래도 도시의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사람이 없는 곳이 좋겠지요. 그곳은 늘 맑고 신선하고 상쾌합니다. 마치 태초의 모습을 보여주는 원시림 속의 숲과 계곡, 하늘과 맞닿은 중간계가 펼쳐진 끝없는 평원들…. 바람이 만들어주는 교향곡이 들리는 신비로운 해변을 걸으며 내 발자국을 최초로 남길 수 있는 그곳. 남극 가까운 그곳 뉴질랜드는 저의 마음을 놓아 쉴 수 있는 곳이자 그 어떤 생각을 마라톤처럼 오래 해도 지치지 않는 신기한 에너지를 주는 곳입니다.

한번은 빙하 지역인 웨스트코스트를 일주하게 되었습니다. 초저녁 광선에 비친 숨 막히는 빙하의 숨결을 발견한 순간 저는 절망했습니다. 카메라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인물사진만을 고집했던 탓에 여행 중엔 카메라를 잘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카메라가 있으면 온전한 휴가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거지요. 정말 사진 한 장만 남겼으면 하는 욕심이 생겼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마오리 한 명이 다가와서 빙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을 때는 정말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젊은 사진가로서 자연에 대한 무지와 자만 때문에 일어난 참 바보 같은 짓이었고, 그 이후로는 종류를 불문하고 늘 카메라를 가지고 다닙니다.

올해는 추석 연휴에 훌쩍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늘 그랬듯이 아마도 비행기에서 새벽을 맞으며 명상을 즐기고, 깊은 숲에서 삼림욕을 마치고, 신비로운 해변에 발자국을 남기며 다시 걷고 또 걷게 되겠지요. 휴가의 말미에는 아마도 일상의 티끌들을 떨쳐낸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자연이라는 큰 선생님이 그곳에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