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영화 '명량'을 보고나서

극장가를 휘몰아치고 있는 '명량'을 보았다. 김한민 감독의 영화다. 사실 별로 볼 생각이 없었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 책에서나 영화에서 이순신에 관한 이야기는 셀 수 없을 정도로 접했기 때문이다. 훤히 다 아는 이야기에 그리 구미가 당기지 않은 탓이다. 그런데 ‘명량’이 하루하루 관객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다는 뉴스가 연일 올라왔다.
 
어떤 영화일까 궁금해졌다. 제목부터 궁금하다. 만약 나보고 제목을 붙이라고 했다면 단연코 ‘명량해전’이다. 그런데 제목은 간결하게 ‘명량’이다. 뭔가 이상하다. 그 이상함을 이해한 것은 영화를 본 다음이었다. 지인들과 어울려 ‘명량’을 보았다. 사람마다 느낌이 제각각이겠지만 한마디로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계곡의 폭폭 앞에 선 느낌이랄까. 군더더기 하나 없이 시원했다. 이런 감동은 그 감동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한 마디로 절제의 미학이었다. 그러니 제목도 당연히 ‘명량’이어야 했다.
 
드라마나 소설 혹은 영화에서의 흔한 전개는 사랑과 음모 그리고 질투와 배신이다. 그리고 눈물과 약간의 코미디 요소가 있어야 했다. 그것이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헌데 ‘명량’에서는 그런 것을 볼 수가 없었다. 감독은 이순신을 말할 때 ‘명량 해전’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감독이 선택한 것은 자기 자신이 이순신이 되어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러고 위기의 순간엔 말이 필요 없음을 알았고 보여 주었다. 군더더기를 버리고 본질에 충실했다.
 
백척간두에 서서 두려움에 가득 찬 사람들에게 말을 아끼며 고뇌하며 묵묵히 용기 있는 사람들로 바꾸어 간 이순신의 리더쉽. 강렬한 카리스마와 존재감으로 냉혹한 용병 장수로 화면을 가득 채웠던 구루지마.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한 강한 신념이 을 가지고 있었던 탐망꾼. 전쟁이라는 고난의 시대에 사랑하는 한 남자에 대한 믿음과 애절한 사랑을 표현했던 탐망꾼의 벙어리 아내. 모두 말은 절제되었고 온몸으로 표현했다.
 
사람들이 이 영화에 환성을 지르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목소리 큰 사람들이 판치는 세상. 제 생각만 옳다고 서로 목소리를 높이고 악을 쓰는 요즘 세상에 한 줄기 청량제를 발견한 것이다. 설, 설만 난무한 세상에 모두들 고개를 돌리고 싶은 것이다. ‘명량’이 보여 준 것처럼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고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 그런 세상을 김한민 감독과 출연배우들이 ‘명량’을 통해서 보여 준 것이다. 그가 원했던 원하지 않았든 간에 적절한 시기에 우리에게 진정한 지도자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제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