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암이 터져 나왔다, 전인권이었다

공기를 찢을 듯한 목소리가 화살처럼 날아왔다. 배 속에 용암 한 덩어리를 품고 부르는 것 같은 보컬은 그대로였다. 20일 오후 4시 서울 여의도의 복합문화공간 엠펍에서 열린 쇼케이스에서 전인권(60)은 세월이 그의 음악을 허물지 못했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했다. 이날 전인권은 다음 달 발매되는 새 앨범에 수록된 노래 3곡을 불렀다. 11년 만의 신보다. 그동안 이순(耳順)에 이른 이 노장 로커의 귀는 전혀 순해지지 않은 것 같았다. 그의 음악은 여전히 거칠고 뜨거웠다. 반가웠다.

음원 사이트에 먼저 공개된 타이틀곡 '내가 왜 서울을…'은 들국화 팬이라면 반가워할 록발라드다. 도입부는 다소 평범하지만, 코러스가 가미된 후렴부에서 전인권의 보컬이 날아오른다. 천장이 높은 곳에서 녹음한 듯 풍부한 공간감 덕분에 탁 트인 산꼭대기에서 듣는 노래처럼 시원하다. 전인권은 "서울이라는 길 위에서 삶의 극단을 걷던 시절, 마르고 힘없던 내 모습을 담은 노래"라고 설명했다. 라틴 록을 시도했다는 '사람답게'는 그루브 있는 드럼과 베이스 연주와 전인권의 목소리가 겉도는 것 같았다. 흥겹기보다 절규하며 가라앉는 그의 목소리는 1980년대 LA메탈의 느낌이 묻어나는 '눈물' 같은 노래에 최적이었다. 수록곡 11곡 중 8곡은 자작곡이고, 3곡은 피아니스트 정원영이 작곡한 노래에 그가 가사를 붙였다.

전인권은 "쇼케이스를 처음 해본다"고 말문을 열었다. '2막 1장'이라는 앨범 타이틀에 대해서는 "연극도 2막이 제일 재밌는 것처럼 지금 음악이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붙였다"고 말했다. 그의 인생 1막이었던 들국화에 대해 "당시 명랑운동회에 나가지 않던 비주류 음악인이었다"며 "안간힘을 다해서 음악을 만들었는데 그게 대중들에게 때 묻지 않고 순수한 음악으로 다가간 것 같다"고 회상했다.

전인권은 정원영을 비롯, 민재현(베이스), 신석철(드럼) 등 1급 세션맨들과 함께 '전인권밴드'를 꾸렸다. 특히 신석철은 이번 앨범 작업에서 모든 곡의 기타 연주까지 맡았는데, 그의 형(시나위의 신대철)만은 못해도 수준급 실력을 보여준다. 신석철은 "전인권 형님이 문자로 '같이 하자'고 연락해서 합류했는데, 갑자기 기타를 시켜서 힘들었다"고 말했다. 전인권은 이날 밴드 멤버를 한 명씩 소개하면서 그들과의 인연에 대해 들려줬다. 그는 들국화 재결성 가능성을 묻자 "최성원과 음악적인 방향과 성질이 너무 달라 자주 싸웠다"며 "나중에 최성원이 어쿠스틱 기타를 치면서 가끔 같이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쇼케이스의 마지막은 들국화의 히트곡 '제발'이었다. "제발 그만해줘/ 새장 속의 새는 너무 지쳤어"라고 노래하는 전인권은 지쳐 보이지 않았다. 들국화의 멤버였던 주찬권이 세상을 떠나고, 최성원은 제주도에 정착한 지금 제발 그가 그만두는 일 없이 음악 활동을 이어갔으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