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으면 펼쳐지던 메밀꽃밭… 이제 두 눈에 담자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메밀꽃 필 무렵'을 읽을 때마다 입맛을 다셨다. 이 구절이 머릿속에서 그림으로 그려질 듯 말 듯, 안타까웠다. 그런 이들에게 21일 개봉하는 한국 단편문학 애니메이션 '메밀꽃 필 무렵,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은 무릎을 탁 칠 만한 작품이다. 이효석, 김유정, 현진건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세 편을 한 편의 영화로 묶어서 상영한다. 2D셀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을 제작한 '연필로명상하기'의 안재훈·한혜진 감독의 작품이다.

원작을 거의 변형하지 않고, 문장도 주인공의 대사를 통해 충실하게 전달하는 편이다. 세 편 다 같은 사람들이 그렸는데도, 원작 각각의 정서와 개성이 잘 살아 있다. '메밀꽃 필 무렵'의 경우엔 시각적 묘사가 돋보이는 문장을 서정적인 그림으로 풀어냈다. 흥겹고 정겨운 봉평장터의 묘사도 세밀하다. '봄봄'은 데릴사위의 독백을 도창(노래를 바르게 이끌어 나가도록 인도하는 악인)으로 표현한다. 마치 원작을 맛깔나게 읽어주는 것 같다.

여기에다가 해금 연주가 더해져 토속적인 색채가 짙다. 이 두 작품에선 서정과 해학이, '운수 좋은 날'은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인다. 흩뿌려지는 진눈깨비 속에서도 불빛을 반짝이는 '모던' 경성. 그 안에서 인력거를 몰고서 동분서주하는 김첨지의 상황이 대비가 되면서 비애와 아이러니가 살아난다.

'뽀로로'나 '로보카폴리'와 할리우드 3D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세대에겐 잔잔한 자극이 될 만하다. 어른이나 아이나 영화관에 가기 전에 원작을 읽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문장으로 상상했던 장면이 그림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하는 재미가 더해지고, 원작을 충실하게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소나기' '무녀도' '벙어리 삼룡이' 등 단편문학도 애니메이션 제작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