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열반 100일 후 되새긴 가르침… 일반인도 읽었으면"

"30년 전 해인사에서 하안거(夏安居) 중 우연히 아함경 한 구절에 섬광처럼 앞이 탁 트였습니다. 그때부터 손대기 시작한 것을 이제야 끝냈네요. 부처님의 원음(原音)을 불자(佛子)들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교양 차원에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27일 만난 학담(鶴潭) 스님은 매우 피곤해 보였다. 그러나 표정에서 뿌듯함은 감추지 못했다. 그는 최근 아함경을 번역·해설한 '학담 평석 아함경'(전 12책 20권·한길사·작은 사진)을 펴냈다. 200자 원고자 4만여장에 이르는 방대한 작업이다. 원고 집필과 편집에만 5년 이상 걸렸다. 그로서는 40여년 출가 인생의 정수(精髓)를 쏟아부은 역작이다.

'아함경(阿含經)'은 부처님 열반 후 100일 만에 제자들이 모여 기억을 되살려가며 스승의 가르침을 합송한 내용을 모은 경전. '아함'은 산스크리트어 '아가마(전해 내려온 말씀)'를 음역한 것이다. 따라서 후대에 주제별로 분류된 다른 대승경전들과 달리 부처 당시 언어에 가장 가까운 경전이며, 대승불교와 남방불교의 공통 뿌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승불교권에서는 초기 경전이란 점에서 다소 가벼이 취급된 경향이 있다.

학담 스님은 "그건 오해"라고 잘랐다. "초기 경전이기 때문에 말씀이 쉬워요. 눈과 빛깔,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감촉, 뜻과 법(法)처럼 말이죠. 유치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쉬운 데에 본질이 있는 법입니다."

스님과 아함경의 만남은 운명 같은 것이었다. 그는 광주일고를 나와 1970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당연히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세상은 어수선했다. 동기들은 고시파와 데모꾼으로 갈렸다. 그는 세상의 법보다 진리의 법(法)에 더 목말랐다. 불교에 끌렸다. 1학년 겨울방학 시작하자마자 경주 분황사를 찾아 도문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출가 후에도 2학년 수업을 들으러 서울로 올라왔다. 강의실에 앉아서도 장좌불와(長座不臥)하며 '이뭣고' 화두를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바세계는 번뇌만 일으킬 뿐. 결국 상원사 해인사 봉암사 백련사의 선방(禪房)을 찾아다녔다. 글은 한 줄도 읽지 않고 10년을 보냈다. 그러던 1980년 문득 '선(禪)이란 게 개인의 해탈과 주관적 명상으로 빠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만에 인문학·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했다. 그리고 80년대엔 불교운동·사회운동에도 참여했다. 그러던 중 아함경을 다시 만났다. 80년대 중반 월간 '해인'지(誌)에 아함경 해설을 1년 정도 연재했다. 연재가 끝난 후 '언젠가 번역을 완성해야지' 다짐했지만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러다 속세 나이로 환갑을 맞을 무렵 다시 아함경을 잡았다. 그렇게 4년을 집중한 끝에 모두 1만쪽에 이르는 '학담 평석 아함경'이 태어났다.

스님은 기존 아함경을 완전히 해체한 후 재조립했다. 그래서 부처님 말씀을 '연기법의 믿음과 우러름' '아함경의 비유' '출가의 길과 세간 생활의 도' 등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재분류했다. 또 복잡하고 난해한 표현과 용어도 한글로 쉽게 옮겼다. 불교 전문 출판사가 아닌 일반 출판사에서 책을 낸 것도 이 책의 가르침이 불교의 울타리를 넘어 널리 퍼졌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학담 스님은 "선방 출신으로서 아함경을 번역하며 선(禪)과 교(敎)가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되는 것을 꿈꿨다"고 말했다. 그는 원고지 4만장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부처님 말씀으로는 제자인 가섭을 칭찬하며 '너의 두타행(頭陀行)이 있는 곳에 내가 있다'를 꼽았다. "고요하게 정화된 삶을 살면서 자신의 복조차 중생을 위해 나누는 것이죠. 부처님의 어떤 사상적인 면보다도 이런 행위가 가슴에 남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