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대미술 발원지에… 우리 예술이 꽃피다

검은 통로에 설치된 거울 앞. 어디선가 총알 날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굉음과 함께 와장창 거울이 깨진다. 그 안에 비친 내 모습도 산산조각 난다. 이용백의 미디어 설치작품 '깨진 거울(Broken Mirror)'이다. "굉장해요! 전통에 치우쳐 있는 중국 현대미술에서는 볼 수 없는 작품이에요." 상하이데일리닷컴의 미술 담당 기자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한국 현대미술의 파격이 중국 고도(古都)를 흥분시켰다. 지난 29일 중국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의 대표 사립미술관인 삼상당대미술관. 돌과 철판으로 이뤄진 이우환의 설치작품 '관계항'을 시작으로 한국 작가 12명의 작품 35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개막한 한국 현대미술전 '우리가 경탄하는 순간들(The Moment, We Awe)'이다.

거장 백남준과 이우환을 비롯해 김아타·이용백·홍경택·권순관·김기라·장종완 등 세대를 망라한 작가들의 대표작을 선보인다. 전시를 기획한 윤재갑 상하이(上海) 하오뮤지엄 관장은 "백남준부터 31세 젊은 작가인 장종완까지 한국 현대미술의 세대와 장르를 아우르는 전시는 중국에서 처음"이라고 했다.

남송(南宋)의 수도였던 항저우는 중국의 전통적 문화 거점이자 중국 현대미술의 발원지다. 1985년 이곳 작가들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반기를 들고 중국 현대미술 운동을 시작했다. 황용핑·차이궈창 등 세계적 작가들이 항저우 출신이다. 하지만 전통문화가 워낙 강세인 곳이라 전통에 반기를 든 작가들이 전통을 넘어서지 못하고 항저우를 떠났다. 개막식을 찾은 중국 문화계 인사와 취재진 등 100여 명은 "이번 전시가 보수적인 항저우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줄 것"이라며 반겼다.

중국 관객들은 특히 미디어아트의 대표 주자인 이용백 작품에 호감을 보였다. 천즈징(陳子勁) 삼상당대미술관장은 "중국 작가들은 쉽게 자만에 빠지고 급하게 성과를 내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들에게 자극이 될 것"이라고 했다. 냉면을 소재로 이념의 무게를 다룬 김기라의 영상, 이상향의 조합을 따스하면서도 기괴하게 표현한 장종완의 작품도 주목받았다. 전시를 공동주관한 학고재갤러리의 우찬규 대표는 "양국의 예술 교류를 증진하는 출발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는 28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