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에 물방울이 흔들린다. 머리가 앞으로 가면 물방울이 뒤따라 앞으로 또르르 매달려간다. 머리가 뒤로 움직이면 물방울이 뒤로 간다. 왼쪽의 물방울은 끈질기게 매달리지만, 오른쪽 물방울은 뚝뚝 떨어진다.
아침에도 우산을 쓴 노객들이 운동장을 빙빙 걷는다. 어떤 분은 셔츠 바람으로 운동장을 빙글빙글 돈다. 모래밭에는 고양이의 발자국이 푹 패여 있다. 더운 날 도둑고양이 두 마리가 모래에 똥을 누었다. 비릿한 냄새가 철봉이 있는 모래 위에 세 덩이가 말려 있다.
학교 운동장에 도둑고양이가 서식하고 있다. 아침이면 어슬렁거리며 나타나 가만히 까치가 않은 나뭇잎에 가 있기도 한다. 어느 날은 10센티도 안 되는 작은 풀 밑에 뚱뚱한 몸을 웅크리고 잠자리가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모습도 보였다.
고양이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안전거리라고 생각되는 곳에 가면 몸은 그대로 두고, 목만 뒤로 돌려서 뚫어지게 바라본다. 나는 고양이가 밉다. 아이들이 비릿해진 모래밭에서 씨름하거나 철봉을 하다가 모래가 애들 입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생각하면 더욱 그게 싫다. 개회충도 아파트의 놀이터 모래에 있었다고 하지 않던가.
이제 해가 요만큼 짧아졌다. 7시에 나무에 둘러싸인 모래밭에 누군가가 비닐 봉투를 들고 가다 도둑고양이를 보고는 먹이를 주는 거다. 모래의 경계에 검은 플라스틱이 쳐진 이유를 그 사람은 아는 걸까. 자신이 준 먹이를 먹은 그 고양이가 습관이 든 그곳에서 습성대로 모래에 똥을 싸고, 애들이 쉬는 넝쿨 아래 벤치의 보이지 않는 바로 아래나 옆의 돌 옆에 동그란 똥을 한 덩이 두 덩이씩 배설하는 것은 아는 걸까?
밥을 주는 것도 정성이다. 기왕 고양이 사랑이 사랑에서 나온 거라면 애들에 대한 배려를 위해서도 고양이 배설물을 쳐줄 생각은 없는 걸까? 도둑고양이가 똥을 배설하는 모래밭에서 자신의 손주들의 손과 입으로 모래에 묻거나 모래와 함께 배설물이 흩어져 들어오거나 오염이 될 수 있는 현실은 너무나 먼 상상 밖의 일이라 그런 걸까?
생명이라고 해서 거리마다 길 잃은 개들이 넘쳐나고, 뭉쳐 다닌다면, 지붕마다 담장마다 도둑고양이들이 뛰어다니고 넘어다니고 은밀한 배설을 담장 밑에, 정원 수 사이에, 모래밭에, 벤치 밑에 싸고 다니면 생명이기에 눈감고 가야 하는 걸까?
어느 깊은 저녁에 손바닥 두 개를 합친 가는 개를 누가 끌고 교정을 들어섰다. 한 바퀴를 돌고 두 바퀴를 돌려던 개 주인을 학교 경비실에서 불러 세웠다. 학교에 개를 끌고 오시면 안 됩니다. 이런 주의를 듣고 개 주인을 교정에서 내보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도둑고양이는 굴신의 대장이요, 자이로 기술이 뛰어나 어떤 자세로 떨어뜨려도 단박에 착지는 가장 안전하게 충격을 흡수하는 자세로 내려앉는다. 누가 말리려야 말릴 길이 없이 담장 사이로 빠져나가기도 한다. 개의 길과 고양이의 길은 문명에서도 전자가 양의 길이라면 후자는 음의 길이다.
고양이에게 밥을 줄 여유와 자상함에, 고양이로 인해 남의 귀한 자녀들이 비린 냄새가 독특한 고양이 똥이 모래밭에 뒤섞여 가는 그 오염을 거둘 지혜행도 같이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비가 얇게 온 모래밭에 푹 패인 도둑고양이의 발자국은 언제가 비가 내린 만큼, 아이들이 노는 만큼 사라질 것이다. 그 모래 깊숙이 비릿하게 스며들어 아이들 콧구멍과 입속이나 손에 고양이의 배설 가루가 들어갈 생각이 없게 보은도 특별한 보은을 했으면 싶다.
어두운 하늘에 마음은 불만 타는 데 그 화기를 삭이는 데 한밤이 꼬박 들어갔다. 역시나 도둑고양이들은 밤새 또 다른 발자국을 만들고, 어딘가 교정 주변에 밥심의 흔적을 남기고 있을 것이다. 맑은 모래밭을 지킬 방법은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