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설악에 부는 끝 여름의 바람이, 오동잎을 떨군다. 누구의 발자취 같다. 혹은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이다. 지난 30일 강원도 인제 만해마을과 백담사를 찾았다. 조선일보와 교보문고, 국립중앙도서관이 공동 주최하는 '길 위의 인문학' 올해 열번 째 탐방이었다. 만해 한용운(1879~1944)의 자취를 찾아 떠난 42명의 탐방객은 시와 함께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다. 문태준 시인이 동행했다.
◇만해마을, 시가 이룬 마을
서울에서 버스로 3시간을 달려 만해마을에 닿는다. 2003년에 조성된 만해 문학의 장이다. 입구인 경절문(徑截門)을 지난다. 불교에서 수행의 단계를 뛰어넘어 단박에 본래면목(本來面目·중생의 본래 마음)을 터득해 부처의 경지에 오르게 한다는 법문(法門)이다. 문을 지나자마자 평화의 시벽이 이어진다. 세계평화시인대회가 열린 2005년, 29개국 55명의 외국 시인과 255명의 한국 시인이 동판에 시를 새겨 걸었다. 스리랑카, 스페인 등 각국의 언어로 쓰인 시가 평화를 기원한다.
만해문학박물관에 간다. '만해와 조선일보'를 설명하는 큰 패널이 눈에 띈다. 만해는 조선일보에 연재소설 '흑풍'과 '삼국지'를 썼다. 문 시인이 "깨달음을 절에만 두지 않고 대중에게 다가가려 한 것"이라 설명한다. 박물관을 나와 범종루로 간다. 범종과 더불어 법고, 목어, 운판이 걸려 있다. 울림으로써 염원에 가 닿는 것들이다. 종에 "… 종소리 들은 겨레가 오래도록 덕과 복 받을 것"이라 새겨져 있다. 탐방객들이 당목(撞木)을 움직여 종을 친다. 마을 앞 북천 위로 소리가 길게 날아간다.
◇백담사, 시가 태어난 자리
용대리에서 점심을 먹고 마을 주민이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탄다. 10분 정도 구불구불 산길을 오르면 백담사다. 문 시인이 "겨울에 오면 완전히 갇힌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절 입구에 당도하니 유심교 아래 드넓은 계곡이 펼쳐진다. 유수에 바위가 씻겨 목탁처럼 반짝인다. 신라 때 지어져 모두 일곱 번 불탔으나 새 모습으로 건재하다. 사바세계에서 큰 죄를 짓고 숨어 지낸 전(前) 대통령 탓에 유명세를 치르긴 했으나, 이곳은 만해가 '님의 침묵'을 탈고한 곳이다. 뜰에 선 삼층석탑이 고요하다.
무문관(無門關)으로 간다. '용맹정진'을 위한 진짜 수행의 공간이다. 문 없는 방, 들어가면 밖에서 문을 걸어 잠가 3개월간 밖으로 나올 수 없다. 10㎡(3평) 남짓한 방에 작은 구멍을 내 공양만 오간다. 법랍(法臘) 높은 스님들도 정신 착란이 오기도 한다는 그 방의 침묵을 생각하며 탐방객들이 만해교육관에 들어가 정좌한다. 준비한 책을 읽으며 만해의 삶을 훑던 문 시인이 "나가서 물소리를 듣자"고 한다. 계곡물이 끊임없이 하산한다. 쪼그려 앉아 사람들이 돌탑을 쌓는다.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시를 안고 발길을 돌린다.
11회는 서울 시장 둘러보고, 12회는 경상도로 역사 여행 떠납니다
11회차 길 위의 인문학은 13일 서울 중부시장~방산시장~광장시장~평화시장~통일상가~디자인플라자~풍물시장을 둘러본다. '시장의 역사―교양으로 읽는 시장과 상인의 변천사'의 저자 박은숙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가 동행한다.
12회차는 책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답사기행―경상우도편'의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와 함께 19일 경남 진주·함양·산청으로 떠난다. 산천재~덕천서원~남사마을~진주성~국립진주박물관~광풍루~남계서원~함양상림으로 이어지는 1박 2일 코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