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추석 떡집 풍경

어둠이 내렸다. 하늘에는 이미 달이 떠 있다. 추석이 낼 모래라 달은 만월(滿月)이다. 도심엔 하늘과 땅의 경계가 무너지고 어둠에 짙게 배어든 지 오래다. 평소엔 붐비지 않던 사 차선 도로에는 차들이 느릿느릿 앞차를 따라가고 있다. 그렇게 많이 고향을 찾아 톨게이트를 빠져나갔다는데 길은 여전히 막히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지금 버스에서 내려 동네 재래시장인 수유 시장에 와 있다. 저녁 9시가 다 되어가고 있어도 가게마다 문은 활짝 열려있고 사람은 바글거린다. 낯설고도 친숙한 모습이다. 사십 대 아주머니 한 분이 부리나케 사람들 틈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사람들 물결에 밀려가고 있다. 아마도 차례상에 놓을 그 무언가를 잊었다 생각나 부리나케 시장에 나왔을 터이다. 나도 질세라 넘쳐나는 사람들 틈을 헤집고 저녁 떡집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차례 음식준비야 이미 다 해놓고 나왔으니 이제 떡만 사면 될 일이다.

다들 분주하다. 전을 부치는 가게에서는 쉴 새 없이 전을 부치며 기름 냄새를 풍긴다. 그 앞에는 전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생선 가게 앞에 대여섯 사람이 서서 뒤늦게 꽃게랑 동태포를 사느라 이리저리 재고 있다. 아마도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역귀성 했을 듯 어딘가 어설프다. 총각들 둘이서 운영하던 생선가게에는 오늘은 남자 셋에 여자 다섯이다. 모두 혼이 나간 얼굴이지만 얼굴만큼은 밝다.

사람들 밀리는 대로 걷다가 떡집으로 들어섰다. 아뿔싸! 너무 일찍 왔다. 떡집 앞에 기다랗게 줄이 서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잠깐 동안 고민에 휩싸인다. ‘어쩌지? 그냥 돌아설까? 아니야 그래도 왔는데 줄을 서보지 뭐’ 그리고 그 줄의 끝을 향해 걷는다. 가게 뒷길은 처음 들어서 보는 길이다. 완전히 70년대 판자촌 모습이다. 앞쪽은 그리도 휘황찬란한 한 가게들로 즐비한데 뒤쪽은 완전히 딴 세상이다. 가로등도 없는 그 처마와 처마가 맞닿을 것 같은 길의 끝을 찾아 섰다.

내 앞쪽에는 대부분 남자들이다. 남자 다섯에 여자 하나 정도로 줄을 섰다. 모두들 단단히 각오하고 온 터인지 표정들이 밝다. 족히 시간 반은 줄을 서야 차례가 올 것 같은데 그 긴 시간들을 같이 하고자 둘 셋씩 같이 와 담소를 나누며 섰다. 여자들은 집에서 차례 준비에 바쁘니 대신 남자들이 와 길게 줄을 서고 있는 풍경은 이 떡집만의 명절 밑 풍경이다.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노태우 대통령 시절 이 집 떡이 청와대로 들어갔다는 소문이다. 진위(眞僞)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떡 맛이 특출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송편은 강원도식으로 꾹꾹 눌러 만드는데 그것을 일일이 손작업으로 한다. 그래서 그런지 떡은 쫄깃쫄깃하며 쉬이 쉬지도 않는다. 진위를 알 수 없는 소문과 더불어 특출한 떡 맛 때문에 다른 떡집은 파리를 날려도 이 집만큼은 문전성시(門前盛市)다.

추리닝 바람에 발가락 슬리퍼 차림의 남자 한 명이 구불거리는 줄을 따라오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전화를 건다. 줄이 두 시간도 더 기다려야 할 것 같고 떡집에서 재료가 떨어져 가라 한다고 있는 대로 소리 지르며 전화를 한다. 줄을 섰던 사람들이 너나없이 킥킥거리며 웃는다. 나도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성미 급한 사람이야 이 꼴을 보고 누가 줄을 서겠는가 말이다.

내 뒤로 아주머니 한 분이 딸인지 동서인지 데리고 줄을 서더니 떠도는 청와대 이야기를 하며 열심히 들려주고 있다. 그 뒤로 편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생겨났고 둘 셋씩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휴대폰을 켜고 느긋하게 게임을 즐기거나 이어폰을 귀에 꽂고 추석 특집 프로그램을 보며 서 있다. 다들 여기야 그렇거니 하는 표정이다.

내가 선 줄도 앞당겨져 열려있는 들창으로 떡집이 들여다보인다. 어른 키도 넘는 스테인리스 시루가 가스 불 위에서 맹렬하게 수증기를 뿜어내고 있다. 좁은 가게 안, 나무로 만든 오래되어 윤기 자르르 흐르는 떡판 위에는 방금 쪄 나온 송편 위로 대형 선풍기 4대가 끊임없이 바람을 일으켜 열기를 식히고 있다.

이제 내 차례인 모양이다. 떡을 달아 파는 아주머니 앞에 섰더니 A4 용지에 검은색 글씨로 2㎏ 이상 안 판다고 선명하게 프린트 해 붙여 놓았다. 모두들 조금씩 나누어 먹자는 뜻일 게다. 아직도 뜨끈뜨끈한 송편을 2㎏을 사서 돌아서는데 등 뒤에 주인아주머니 말이 따라온다. 집에 가면 비닐봉지 열어 놓으라고 그래야 떡이 맛있다고.

두 시간을 줄 서서 기다려 떡을 사 들고 발걸음도 가볍게 돌아선다. 하늘에 떠 있는 둥근 달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세상사는 게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라지만 오늘만큼은 너나없이 얼굴이 밝다. 그래서 하는 말 ‘한가위만 같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