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를 사로잡은 비채나의 물회
지난 4일 오후 호놀룰루의 유명 호텔인 '더 모던'이 시끌벅적해졌다. 유명 셰프 14명과 와인 소믈리에 17명이 한데 모였기 때문. '음식 올림픽'이란 별칭에도 미묘한 경쟁심보다는 '서로의 것을 맛보고 즐기고 싶다'는 표정이 더 진했다. 여유와 낭만이 넘치는 꿈의 휴양지여서 그렇고, 배려와 포용의 철학을 담은 알로하(Aloha) 정신으로 충만해져 그런 듯 보였다.
1년 내내 페스티벌만 기다리는 미식가와 탐식가(貪食家)의 열망이 얼마나 대단한지 대다수는 행사 시작 3개월 전에 7000여장이 넘는 티켓이 모두 매진됐다. 3일 할레쿨라니 호텔에서 열린 크루그(샴페인)&캐비아 행사는 입장료가 1000달러를 호가하는 데도 몇분도 채 안 돼 매진됐다. 더 모던에서 열린 이날 행사 티켓 가격만 최소 200달러, 스시와 소주·사케 등을 선보이는 VIP 디너는 2000달러나 하는데도 입장권 수백장이 모두 팔렸다.
푸드&와인 페스티벌의 특징은 셰프만의 레시피를 선보이면서도 하와이의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 하와이 출신으로 행사를 주최한 알란 웡 셰프는 "품질 좋은 하와이 식재료를 세계에 알리면서도 다양한 요리에 접목할 수 있는 유연성을 보여주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한국 비채나 조희경 대표와 김병진 셰프가 선보인 '물회' 역시 현지식 재료만 써야 되는 터라 생고추 대신 할라피뇨를, 한국식 국수 대신 중국식 당면을 넣어야 했지만 그 인기는 상당했다. 고추장의 알싸한 맛이 감초와 계피, 배·블루베리 등 각종 과일과 어우러져 달콤상큼한 맛을 극대화했다. 하와이산 도미살 역시 차졌다. 지난해 고추장 목살 찜을 선보였다는 조희경 대표는 "문화를 버무리는 하와이의 특징을 고려해 비벼 먹을 수 있으면서도 고추장의 가벼운 맛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물회를 출품했다"며 "지난해 선보인 작품을 유명 레스토랑에서 굉장히 비슷하게 카피해 인기 끄는 걸 봤는데 물회도 하와이 식문화 속에 자리 잡길 바란다"고 말했다. 물회를 맛본 호놀룰루 매거진의 마사 쳉 기자는 "축제가 끝난 뒤에도 계속 생각날 정도로 물회를 먹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다"고 평했다.
미슐랭 스타셰프인 낸시 오크스(샌프란시스코 블루바드 레스토랑)와 요식업계 오스카상인 '제임스 비어드 상'을 받은 톰 더글러스(시애틀 롤라 레스토랑 등)도 각각 1000개가 넘는 활전복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축제는 축제로만 끝나는 게 아니다. 현지 진출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모리모토 마사하루나 로이 야마구치처럼 하와이에 분점을 오픈해 여행객들의 입맛을 돋운다. 다른 매장에 비해 가격도 좀 더 저렴하다 모리모토 뉴욕의 오마카세는 1인당 135달러인데 모리모토 와이키키는 120달러다. 브런치 메뉴는 10달러 내외.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맛보던 탑셰프 음식을 하와이에선 쇼핑도, 서핑도, 태닝도 하면서 즐길 수 있다. 지난해 하와이를 찾은 한국 관광객은 약 17만명. 일본은 이의 10배가 넘는다. 때문에 일본의 영향을 받은 음식이 상당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인 요리사의 명성도 이 못지않다. 하와이의 유명 레스토랑인 '모리모토'나 'MW' 등에 진출해 '퓨전 창작요리'에 머리와 손맛을 더하고 있다.
◇용암과 땅의 기운이 빚어낸 음식
퓨전이란 건 무(無)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다. 전통에 대한 충분한 고찰이 있을 때 퓨전도 정체성을 찾고 다른 것과 어우러질 수 있는 법이다. '퍼시픽 림 퀴진'역시 하와이 전통 방식을 조금씩 응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와이 푸드&와인 페스티벌에서 중요한 코스 중 하나도 하와이 전통 방식으로 음식을 만드는 '헤에이아' 지역을 찾는 일이었다. 와이키키 해변에서 자동차로 한 40분쯤 달리다 만난 헤에이아. 원시림에 온 듯 울창한 수풀 속에 들어서니 온몸에 걸치고 있는 게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와이 원주민의 노래 의식이 끝난 뒤 사람들이 갑자기 땅을 파기 시작했다. 땅속 오븐인 '이무(imu)'로 만든 요리인 '칼루아 피그(Kalua Pig)'를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땅속에 커다란 구멍을 판 뒤에 뜨겁게 달군 용암을 바나나잎이나 연잎, 티(ti) 잎으로 싸서 넣고는 그 위에 통돼지를 바나나 잎 등으로 싸서 올린다. 흙으로 덮은 뒤 하루 정도 숙성해서 먹는 것이다. 지열에 용암석 증기까지 더해 돼지는 잘게 찢을 수 있을 정도로 푹 익는다. 그냥 음식을 먹을 수도 있지만 원주민 체험을 해보라면서 진흙 물구덩이 속의 잡초를 한 시간 가까이 뽑는다. 몸으로 땅을 밟고 땀을 흘리면서 자연을 찬미하고 좋은 음식을 만들기 위한 노동의 대가도 느껴보라는 것이다.
이런 음식은 원주민이 사는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전통음식 전문점인 '오노'를 비롯해 '헬레나스 하와이언 푸드', 하와이를 대표하는 알란 웡의 레스토랑 '파인애플룸' 등에서 다양하게 선보인다. 또 하얀 두부 같은 모양의 코코넛 푸딩인 하우피아(Haupia)는 로이 야마구치의 '로이스'를 비롯해 다양한 레스토랑에서 디저트로 응용돼 사랑받고 있다.
톱 셰프의 퍼시픽 림 퀴진과 전통 음식 맛볼 곳?
비행편
대한항공은 인천~하와이(호놀룰루) 직항 노선을 주 10회(비행시간 8시간 30분·서울 도착행은 10시간 내외), 인천~나리타(成田)~하와이 노선(비행시간 10시간 30분)을 주 7회 운항하고 있다.(성수기엔 증편) 그 외에도 아시아나 항공, 하와이안 항공 등이 직항을 운행하고 있다. 또 진 에어는 내년 여름쯤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중 처음으로 '인천~호놀룰루' 노선에 취항할 예정이다.
쇼핑
하와이는 쇼핑 마니아들에겐 이미 '쇼핑 천국'으로 명성을 떨쳤다. 주 세금(세일즈 텍스)이 4.712%로 상당수 미국 주 세금(7~9%)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알라모아나 센터'는 세계 최대 규모 야외 쇼핑몰이다. 럭셔리 브랜드 매장을 비롯한 290개가 넘는 숍이 지상 4층 규모의 거대한 쇼핑몰을 꽉 채우고 있다. 메이시스, 노드스트롬, 니만마커스 같은 백화점도 자리하고 있다. 홈페이지는 한국어 서비스가 되고, '프리미어 패스포트 교환 쿠폰'을 프린트해 가면 다양한 할인쿠폰을 받을 수 있다. (808)955-9517. www.alamoanacenter.kr 호놀룰루에서 유일하게 면세 쇼핑이 가능한 'DFS 갤러리아 와이키키 DFS'는 불가리·까르띠에·에르메스 등 유명 럭셔리 브랜드 제품이 있다. (808)931-2700. http://www.dfs.com/
숙소
‘천국 같은 집’이라는 별칭의 할레쿨라니 호텔은 하와이에 몇 안 되는 5성급 호텔이다. 와이키키 해변과 바로 붙어 있다. 남아프리카에서 수입된 유리 타일 120만개로 수놓은 카틀레야 오키드 꽃문양의 수영장이 호텔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하우스 위드 아웃 어 키’ 레스토랑에선 와이키키 해변 바람을 맞으며 밥을 먹을 수 있다. 보통 1박당 50만~60만원. 탤런트 이영애가 결혼식을 올려 유명해진 카할라 리조트&호텔 역시 하와이를 대표하는 호텔 중 하나. 국내 정재계 유명인사를 비롯해 연예인의 ‘아지트’이기도 하다. 1박 30만원 후반대부터. 문의 하와이 관광청 www.gohawaii.co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