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9.12 00:35

배경·상황까지 연출하는 자연 다큐 '히든 킹덤'

‘히든 킹덤’ 1부에서 미국 애리조나 소노란사막의 매가 메뚜기쥐를 쫓고 있다. 합성된 장면이다
‘히든 킹덤’ 1부에서 미국 애리조나 소노란사막의 매가 메뚜기쥐를 쫓고 있다. 합성된 장면이다. /BBC월드와이드 제공
배경 합성을 위해 초원 한복판에 블루스크린을 설치한다. 따로 촬영한 영상을 한 장면으로 합치기도 한다. 이 프로그램은 드라마가 아니라 '자연 다큐멘터리'다. 지난달 31일부터 매주 일요일 KBS에서 방영 중인 3부작 BBC 다큐 '히든 킹덤'. 세계 10개 지역 총 88종 작은 동물들의 얘기를 담은 이 다큐는 지난 1월 영국에서 방영 당시 가짜 논란을 일으킨 작품이다. 현지 언론이 'BBC 다큐 사상 가장 논쟁적인 자연 다큐'라 표현했을 정도다.

이 다큐는 드라마타이즈(Dramatize)를 표방하는데, 한마디로 드라마 같은 다큐다. 망원렌즈로 야생을 담는 기존 자연 다큐와 달리 짜놓은 내러티브가 있고, 합성이 있다. 제작진의 적극적인 개입이 뒤따른다. BBC 자연팀(Natural History Unit)의 수장 웬디 다크는 "만약 순수하게 자연 상태로만 찍는다면 재밌는 건 다 놓치고 5~10분 정도밖에 건질 장면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시리즈 PD인 BBC 마크 브라운로(46)는 이메일을 통해 "최첨단 고화질 카메라와 HD 슬로모션 카메라 등 신기술로 다큐를 할리우드 영화 '호빗'이나 '벅스 라이프'처럼 보이게 하려 했다"면서도 "세트 촬영과 연출진의 개입이 있긴 했으나 동물의 행동은 전적으로 자연적이었다"고 말했다. 1부엔 긴코땃쥐가 떨어지는 코끼리 똥에 혼비백산하거나 그 똥에 몰려드는 쇠똥구리가 담겼는데, 등장하는 코끼리 다리는 모형이고, 똥은 미리 모아놓은 것이다. 쇠똥구리가 똥을 굴리는 장면은 케냐의 차보국립공원에 간이 세트를 만들어놓고 찍었다.

1부 하이라이트였던 방울뱀의 메뚜기쥐 사냥 장면 역시 합성이다. 마크 PD는 "사내 윤리규정에 따라 촬영을 위해 동물을 죽이거나 위험에 내몰 수 없다"면서 "열을 감지해 공격하는 방울뱀의 특성을 이용해 카메라 위에 뜨거운 수건을 걸어놓고 공격을 유도한 뒤, 도망가는 메뚜기쥐의 장면과 합쳤다"고 설명했다.

다큐는 연출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홈페이지뿐 아니라 방송 말미에 10분 정도의 '메이킹 필름'을 공개한다. 지난해 10월 BBC 촬영 감독 더그 앨런이 "동물의 생태를 카메라에 담으려면 통제된 환경에서 작업할 수밖에 없다"며 "BBC 자연 다큐의 많은 부분이 촬영용 세트에서 촬영된 것"이라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마크 PD는 "제작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시청자는 속았다는 느낌을 덜 느끼고, 작품의 질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조선닷컴

시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