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봅시다] 감기 통원비도 준다더니… "그런 병은 보험 안돼"

회사원 박모씨는 작년 7월 TV홈쇼핑을 통해 어린이 보험에 가입했다. 아이가 감기에 걸려 병원에 다녀온 뒤 보험금 지급을 신청하자, 보험사 측에선 "아이가 '급성 기관지염'에 걸려야만 보험금을 지급한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박씨는 "'코맹맹이 코감기도 언제든지 통원비 2만원'이라는 광고를 보고 가입했는데 사기를 당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TV홈쇼핑을 통해 판매된 보험을 둘러싸고 소비자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은 "지난 2011~13년 TV홈쇼핑 관련 소비자 피해 926건 가운데 '보험'이 65건으로 1위를 차지했다"고 16일 밝혔다. 전체 보험 피해 가운데 85%(55건)는 질병·상해 보험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보험 가입 시 계약 내용을 사실과 다르게 설명하거나 소비자에게 불리한 사실을 설명하지 않거나 ▲보험 가입은 쉽게 승인했지만 보험금 지급 시에는 가입 조건이 되지 않는다면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해 민원이 발생한 경우가 많았다.

◇홈쇼핑 불완전 판매 1년에 6000건

보험업계는 지난 2012년 업계 자율로 홈쇼핑 보험 판매 시 보험 가입 시 유의사항을 의무적으로 안내하도록 했다. 소비자 피해가 크다는 지적에 따라 금융 당국도 대책을 내놓았다. 불완전 판매 우려가 높은 복잡한 보험상품은 방송 내용을 생명보험협회나 손해보험협회가 사전에 심의하도록 했고, 보험금 지급을 제한하는 이유 등 보험사가 밝히기를 꺼리는 사항도 광고 방송에서 알리도록 했다. 이 같은 조치가 이어지면서 홈쇼핑 보험과 관련한 민원은 2011년부터 작년까지 3분의 1로 크게 줄었지만, 여전히 매년 6000여건(2013년 기준)이나 발생하고 있다. 최근엔 규제 도입 이전 가입자들이 뒤늦게 몸이 아파 보험금 지급을 문의했다가 낭패를 보는 사례가 더해지면서 뒤늦게 피해를 확인하는 소비자도 나오고 있다. 부산에 사는 강모씨는 2011년 5월 TV홈쇼핑 광고를 보고 '○○○○○ 부모님 보험' 상품에 가입했다. 강씨는 "상담원에게 '어머니가 퇴행성 관절염으로 치료 중인데 가입이 가능하냐'고 문의했는데 상담원이 '문제없다'고 해서 가입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강씨 어머니가 수술을 받자 보험사 측은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규제 강화를" vs "지금도 심해"

대개 홈쇼핑 방송에선 보험 상품의 장점을 집중 부각해서 설명한다. 소비자가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사항이 방송에서는 빠지거나 간단히 언급된다. 현재 홈쇼핑은 60분짜리 보험 방송이면 6~8차례가량 소비자가 알아야 할 보험 가입 내용을 설명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너무 빠르게 쉼 없이 설명하다 보니 보험에 익숙지 않은 소비자가 제대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오래전 가입한 보험의 경우 불완전 판매 피해를 입증하려 해도 관련 영상을 구하기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다고 피해자들은 말한다.

금융소비자연맹 이기욱 보험국장은 "홈쇼핑 방송 시 주의 사항 노출 빈도를 확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험업계 일각에선 다른 의견을 낸다. 한 대형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2012년 도입한 규제로 홈쇼핑 보험 판매가 크게 줄어들 정도로 현재 규제 수준은 과도할 정도"라고 말했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선진국의 경우 TV홈쇼핑을 통한 보험 판매 자체를 규제하지 않지만, 보험사들이 홈쇼핑 판매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소비자원 황진자 약관광고팀장은 "외국에선 불완전 판매가 적발되면 금융 당국의 강력한 제재와 막대한 배상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보험사들이 오히려 홈쇼핑 채널을 통한 판매를 꺼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