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만 땀방울 속 '나'를 찾는 소년들

"Are you from Korea?(한국인이니?)"

세계 대회에 나간 오사카조선고급학교(이하 오사카조고) 럭비부의 학생에게 한 호주 학생이 묻는다. "I am Korean(나는 한국인이야)"이라고 대답하자 옆에 있던 한국 학생이 "No, you are Japanese. I am orginal Korean(아니, 넌 일본인이야. 내가 진짜 한국인이지)"이라고 반박한다. 오사카조고의 학생이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로 말한다. "같은 민족인데, 허허."

다큐멘터리 '60만 번의 트라이'(감독 박사유·박돈사)는 전국고교럭비선수권대회 '하나조노(花園)'에 나가는 오사카조고 럭비부의 이야기다. 럭비부의 학생들은 재일 조선인 3세다. 이들은 학교에서 서툰 우리말을 쓰면서, 학생들끼리 있을 때는 일본어로 유창하게 이야기하고, 수학여행은 '조국' 북한으로 다녀오면서, '소녀시대'를 즐겨 듣는다.

일본 고교 야구에 '고시엔(甲子園)'이 있다면, 럭비에는 하나조노가 있다. 영화는 오사카조고 럭비부가 2010년 하나조노 준결승에 진출, 4위에 오르는 모습으로 시작해, 이듬해 하나조노 경기까지를 담았다. 소박하다 못해 서툴기까지 한 카메라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카메라가 소년들의 럭비 연습과 경기를 세세하게 찍은 덕분에 한편의 스포츠 만화나 영화를 볼 때의 쾌감마저 느껴진다. 선수들은 온종일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서로에게 태클을 걸고, 훈련 후에는 머리를 맞대고 작전 회의를 한다. 화면에서 흙 묻은 이들의 옷에 밴 땀냄새가 진동을 한다. "너를 믿는다" "우리는 하나"처럼 스포츠 영화의 진부하고 낯간지러운 대사도 땀을 주룩주룩 흘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이들의 입에서 나올 땐 관객들의 가슴을 툭툭 건드린다.

오사카조고 럭비부 학생들은 연습 도중 틈틈이 길에서 행인에게 전단을 나눠주고, 럭비부 주장은 기자회견에 참석한다. 전자는 2007년부터 오사카시(市)가 오사카조고 운동장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에 운동장을 사수하기 위해서고, 후자는 일본 정부의 고교 교육 무상화 정책에서 조선학교를 제외시킨 것을 반대하기 위한 것이다. 럭비부 주장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한다. "럭비에는 '노사이드' 정신이 있습니다. 시합 중엔 편이 갈려 '사이드'가 생기지만 시합이 끝나면 편이 없어지고 함께 즐기는 것입니다." 그는 목이 멘 채 한참을 쉬었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말을 잇는다. "이렇게 편을 가르는 것이 분합니다."

중요한 시합 전날 운동장에 세워둔 태클백에 태클을 걸며 각자의 각오를 외치는 것이 이들의 의식(儀式)이다. 2011년 하나조노 준결승 전날, 한 선수는 태클백 세 개를 차례로 쓰러뜨린다. 하나를 쓰러뜨릴 때마다 그는 "60만 동포의 소원"이라고 울부짖는다. 영화 제목 '60만 번의 트라이'는 그렇게 나온 것이다. '트라이'는 럭비에서 공격수가 상대편의 영역 안에 공을 찍는 것.

영화의 사족(蛇足)은 박사유 감독의 1인칭 내레이션이다. 배우 문정희가 그의 목소리를 대신한다. 감독은 내레이션을 통해 이들에게 직접 "사랑한다" "미안하다" 고 말한다. 국적과 차별에 아랑곳없이 웃고, 울며, 땀을 흘리는 10대 소년들의 모습에는 말이 필요없다. 18일 개봉.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