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구멍 뚫어보자" 아버지들 간절한 행렬

'2014 중·장년 채용 한마당'이 열린 22일 낮 서울 삼성동 코엑스. 오전부터 몰려든 40~50대 구직자들로 3층 D홀은 대졸 신입사원 채용 행사장을 방불케 했다. 한 부스에서는 말쑥한 정장 차림의 50대 구직자가 스무 살 정도 어린 면접관의 질문에 진땀을 흘리며 대답하고 있었다.

머리가 희끗한 60대들은 행사장 곳곳에 붙어있는 채용 공고를 꼼꼼히 살펴봤다. 이력서 출력 센터와 무료 사진 촬영소에는 수십명씩 장사진이 늘어섰다.

행사장 가운데 '희망의 메시지 판'에는 인생 2막을 꿈꾸는 중·장년들의 바람을 담은 짧은 글귀가 붙어 있었다. '우리에겐 아직 많은 열정이 있습니다', '새로운 인생을 위해!', '힘찬 재도약을 꿈꾼다….'

이날 행사는 '100세 시대'를 맞아 일할 능력을 갖춘 '액티브 시니어'와 구인난(求人難)에 시달리는 중견·중소기업체를 연결하기 위해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고용노동부가 함께 마련했다.

삼성·현대차·LG 등 주요 대기업 협력사 116곳과 59개 중견·중소업체 등 190개 업체가 부스를 열었다. 이날 하루에만 '인생 2막의 취업'을 꿈꾸는 7000여명이 몰렸다. 취업행사의 주 타깃은 은퇴 대열에 본격 합류하기 시작한 베이비붐 세대(1955~ 1963년생)다.

참가 기업들은 이날 행사를 통해 유통·서비스직(1033명), 사무·관리직(263명), 생산·품질직(258명)등 2081명을 채용한다. 창업 후 3년 생존율이 50%를 넘지 못하는 혹독한 자영업 세계를 잘 알고 있는 중·장년들에겐 황금 같은 기회다.

◇풍부한 현장 경험 돋보여

채용 현장의 중·장년 구직자들은 한 곳에서라도 더 상담하고 면접을 보기 위해 이마에 땀이 맺히도록 행사장을 돌았다. 현장 면접에 참가한 정복(正服) 차림의 군인들도 보였다. 간병사나 요양보호사, 배달·서빙업무 직원을 전문으로 선발하는 '시간제 일자리관'에는 50대 주부들이 대거 몰렸다.

10여년간 전자장비 제조업체에 다니다 작년 말 퇴직한 박모(47)씨는 "관심 있는 업체 3~4곳이 있어 면접을 봤다"며 "기업의 규모와 특성에 따라 부스를 따로 배치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구직자들의 직업 가치관 검사를 통해 적성에 맞는 기업을 골라주고 이력서 작성 방법과 면접 노하우까지 꼼꼼히 가르쳐주는 '취업 토털 솔루션' 센터도 인기를 끌었다.

전기·정보통신 공사 업체인 대선E&C 최준재 이사는 "20~30년 동안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50대 등 10여명이 찾아와 이력서를 냈다"며 "젊은이들이 따라갈 수 없는 현장형 스펙을 갖추고 있어 채용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구직자들은 "경력이나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기능직을 구하는 업체가 상당수였다"며 아쉬워했다. 직종·연령별로 더 세분화된 채용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건설 경력 30년차인 정광화(66)씨는 "40~50대 구직자들에게 밀려 60대인 나는 명함도 못 내밀었다"고 씁쓸해했다.

정씨는 "자기소개서에 아파트 건설 현장을 누볐던 이력과 각종 자격증을 꼼꼼히 기록했지만 내 이력서에서 '48'로 시작하는 주민등록번호를 본 면접관은 별 관심이 없는 표정이었다"고 말했다.

◇만족스럽지 않아도 일단 취업하는 '징검다리 작전'을

기업체 면접 담당자들은 “막연하게 일자리를 찾는 구직자가 대부분”이라며 “좀 더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자세가 아쉽다”고 입을 모았다. 앞으로 베이비붐 세대 퇴직자들이 대거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자신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관련 전문 분야를 집중 공략하든가 아니면 눈높이를 확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용 부품 제조업체인 C사의 김모 과장은 “금융권에서 20여년 경력이 있다는 40~50대 구직자 3명과 인터뷰했는데 하나같이 자신이 구체적으로 뭘 할 수 있을지 대답하지 못했다”며 “재취업에서 원하는 것과 포기한 것을 분명하게 정하고 들어가야 채용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취업 전문가들은 “이력서는 과거 수행했던 프로젝트 경험과 수상 경력, 자격증 등을 구체적으로 소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동준 전경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장은 “목표 없이 탐색만 하다가는 재취업 기회를 영영 놓치게 된다”며 “만족스럽지 못해도 일단은 일자리를 잡는 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재취업의 ‘골든 타임’인 은퇴 후 1년을 놓치면 일자리를 구할 가능성이 급격히 떨어지므로 일단 취업한 뒤 옮기는 식의 ‘징검다리 전략’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