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권 국내證市 매력 없어… 주식도 해외直購(직구)

직장인 조모(34)씨의 주식 투자는 퇴근 후 밤 10시쯤 시작된다. HTS(홈트레이딩시스템)를 켜고 미국과 유럽 증시를 살펴본 뒤 사고팔 종목을 선택해 클릭 몇 번으로 거래를 마친 다음 잠자리에 드는 것이 일과다. 2년 전부터 해외 주식에 직접 투자하는 '주식 직구족(族)'으로 변신한 그는 5000여만원의 투자금을 미국의 구글과 존슨앤존스, 중국의 텐센트와 인민재산보험 등에 나눠서 투자 중이다. 조씨는 "한국은 시장 규모가 작아 주식이 제값을 못 받는 반면 해외 주식시장은 시가총액이 크고 거래량도 많다는 점에 끌렸다"며 "배당도 한국 기업보다 많은 편이라 지금까지 30% 정도 수익을 올렸다"고 말했다. 저금리와 박스권 증시에 지친 투자자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면서 해외 주식 직접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여기에 홍콩 주식시장을 통해 중국 주식을 사고파는 후강퉁(�戶港通) 시행을 다음 달 앞두고 있어 해외 직구족은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급증하는 해외 주식 직구족

중국의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가 상장되던 지난 19일 밤 신한금융투자 글로벌사업부에는 알리바바 주식을 사겠다는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 이날 390건의 주문이 접수돼 이 중 115건이 실제로 체결됐다. 신한금융투자 관계자는 "해외 주식을 처음 거래하는 고객이 70%에 이를 만큼 해외 주식 투자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회사가 최근 마련한 해외 주식 투자 세미나는 300석의 좌석이 모자랄 만큼 성황을 이뤘다.

해외 주식 직접투자는 중국 증시가 활황세였던 2007년과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인 2009~2010년 고액 자산가를 중심으로 붐이 일었다가 글로벌 증시가 혼란에 빠지면서 급격히 위축됐었다. 그러다 '해외 증시의 선전, 국내 증시의 부진' 현상이 나타난 지난해부터 다시 해외 직접투자가 급증세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2일 현재 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 보유액은 44억3722만달러로 1년 전에 비해 37%, 2011년 말에 비하면 76% 증가했다. 차이나가스홀딩스, 신일본제철, 비자 등 각 나라의 대형 우량주들이 선호 종목이다.

투자자 저변도 크게 확대됐다. 신한금융투자의 경우 2007년 1만개이던 해외 주식 계좌가 최근 3만개를 돌파했다. 시장점유율을 감안할 때 해외 주식 직구족은 10만명을 넘은 것으로 금융투자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다음 달 후강퉁 시행으로 중국 투자를 가로막아온 거대한 벽이 허물어지면 해외 주식 직구족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키움증권 관계자는 "해외 주식 문의 전화 중 30%가 후강퉁 관련일 정도로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수수료·세금·환리스크 조심해야

해외 직구족이 크게 증가한 데는 HTS나 MTS(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 등 투자 절차가 간편해진 이유도 있다. 신한·키움·우투·대우·한투 등 10여개 대형 증권사들이 해외 주식 투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들 증권사에서 증권 계좌를 만들고 해외 서비스 이용에 동의하기만 하면 국내 주식을 거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해외 주식을 사고팔 수 있다.

다만 해외 주식은 국내 주식에 비해 거래 비용이 높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우선 증권사가 가져가는 주식 거래 수수료가 0.25%(온라인)~ 0.5%(오프라인) 정도로 국내 주식 거래 수수료보다 높은 편이다. 원화를 달러화나 위안화로 바꾸려면 환전 수수료도 내야 한다.

국내 주식 거래에는 붙지 않는 세금도 고려해야 한다. 거래 차익에서 250만원을 공제한 금액에 대해 22%가 양도소득세로 부과된다. 1억원을 투자해 2000만원의 수익을 냈다면 385만원(1750만원×22%)을 세금으로 내는 셈이다.

해외 주식 거래 때 가장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환율 리스크다. 현지 통화가 강세 때는 추가적인 환차익을 얻을 수 있지만, 반대로 원화가 강세일 때는 주가 상승으로 인한 이익을 환율로 다 까먹을 수도 있다.

신한금융투자 조지연 팀장은 "해외 기업은 국내 기업에 비해 생소하기 때문에 주식 투자를 하기 전에 해당 기업에 대해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며 "거래 비용 등을 감안할 때 단타족보다는 장기 투자자에게 더 적합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