蘇 신부님, 내마음 움직이게 한 향기

미국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남(南)수단 톤즈로…. 사랑은 이렇게 전염되는가 보다.

'부산 송도의 성자(聖者)' 소재건(蘇再建·1930~1992) 신부의 일생을 정리한 '알로이시오 신부'(가톨릭출판사)를 읽다 보면 드는 생각이다. 저자는 한국화가 하삼두(56)씨. 화가가 신부의 전기를 썼다는 점이 눈에 띈다. 하씨는 "소 신부님에 대한 마음의 빚 때문"이라고 했다. 하씨의 부인은 소 신부가 설립한 마리아수녀회에 입회할 마음이 있었는데 하씨와 결혼하는 바람에 수녀가 되지 않았다는 것.

미국 출신(본명 알로이시오 슈워츠·Aloysius Schwartz)인 소 신부는 1957년, 아직 전흔(戰痕)이 가시지 않은 부산을 자원해서 찾아왔다. 워싱턴DC 출신의 메리놀회 사제인 그는 "상위 5% 생활을 하는 수도자들이 어떻게 하위 5%의 삶을 알겠느냐"며 한국에 온 것. 부산에서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피란민들이 많이 살던 송도성당 주임사제를 자원했다. 소 신부는 한국 이름도 '재건(再建)'으로 짓고 전쟁으로 상처받은 한국 사람들의 마음을 사랑으로 보듬으며 '재건'했다. 전쟁고아들을 돌보기 위해 시작한 '소년의 집'은 지금까지 2만여 졸업생을 배출했고, 마리아수녀회는 올해 창설 50주년을 맞았다. 1960~70년대 부산 송도 인근에 살았던 이들은 "소년의 집 아이들이 우리보다 잘 먹었다"고 회상할 정도로 그는 온 정성을 기울였다. 국민훈장 동백장(1975), 막사이사이상(1983) 등은 그의 사랑에 대한 작은 보답이었다. 노벨평화상 후보로 2차례 올랐고, 현재 복자(福者) 품에 올리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다.

그의 사랑은 부산에서 톤즈로 이어졌다. 그가 주임신부로 있던 송도성당에서 '톤즈의 성자' 이태석(1962~2010) 신부가 사제의 꿈을 키웠던 것. 이 신부의 어머니는 소 신부가 벌인 '손수건 자수' 사업에 참가해 생활비를 보태기도 했다. "어릴 적 집 근처에 있었던 '소년의 집'에서 가난한 고아들을 보살피고 몸과 마음을 씻어 주던 소 신부님과 그곳 수녀님들의 헌신적인 삶의 모습도(…)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한 아름다운 향기다."(이태석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소재건 신부의 삶을 담담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낸 하삼두씨는 소 신부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결혼 후에도 '소년의 집' 바로 울타리 너머 살았고, '알로이시오 중고등학교'에서 미술반 특활 교사로 자원봉사했다. 이번에 마리아수녀회 창설 50주년을 맞아 집필 부탁을 받고는 오랜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 혼신을 다했다. 그 결과 책은 한글과 영문 그리고 하씨의 아름다운 문인화풍 삽화까지 곁들여 멋진 모습을 갖췄다. 하씨는 "책을 위해 자료를 다시 보면서 새삼 '소 신부님은 오직 하느님만 보고 사셨구나' 하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마리아수녀회는 50주년을 맞아 10월 1일 기념행사를 갖고, 3일에는 부산문화회관, 25일엔 서울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감사음악회도 갖는다. 문의 (051)250-5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