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늘고 길게 가야 돼 우덜은, 삐걱거리면서

장사익(65)의 노래는 낭창낭창하다가 문득 거룩하고, 새끼 잃은 짐승 울음처럼 구슬프다. 그는 평소 읽어둔 시에 곡을 써서 노래로 만든다. 그래서 그의 노래에서는 시가 날아오른다. 마흔다섯에 데뷔한 이 가수가 꼬박 20년을 한결같이 노래할 수 있었던 비결일 것이다.

지난 26일 서울 서초동 한 녹음실에서 그는 신곡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를 녹음하고 있었다. 반주 먼저 녹음하고 노래를 맨 마지막에 녹음하는 보통의 가수와 달리, 그는 모든 연주자와 함께 한꺼번에 녹음하는 방식을 고수해 왔다. "오늘 바로 지금의 호흡이 주는 맛과 멋이 있으니까"라고 했다.

"엄마 배 속에서 세상에 태어났으니 반갑고, 여러 가지 인연들로 친구를 사귀었으니 고맙고,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노래 부를 수 있으니 기쁘다"는 뜻으로 쓴 가사에 맞춘 노래를 녹음한 뒤, 스튜디오 밖에 나와 들어보며 그는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정말 반갑고 고맙고 기뻐 보였다.

이 노래를 비롯한 신곡 4곡을 포함해 8곡이 담긴 20주년 기념 앨범 '꽃인 듯 눈물인 듯'이 곧 출시된다. "지는 '후로꾸'예유. 노래를 제대로 배운 적도 없쥬. 시간은 강물처럼 흐르지만 나헌테는 쌓여서 20년이 됐쥬. 하루하루 열심히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예유."

신곡 '우리는 서로 만나 무얼 버릴까'는 사뭇 감동적이다. "남한강은 남에서 흐르고/ 북한강은 북에서 흐른다/ 흐르다가 두물머리 너른 들에서/ 남한강은 남을 버리고/ 북한강은 북을 버리고/ 한강 되어 흐르네/…/ 우리는 서로 만나 무얼 버릴까" 하는 가사에 얹힌 장사익의 바이브레이션이 깊고 너른 바다로 향하는 물결처럼 도도하다. 이 노래는 어려서 청각을 잃은 그의 60대 팬이 소개해준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장사익이 상고 졸업 후 보험회사를 비롯해 직장 10여 곳을 다니다가 가수로 데뷔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노래하기로 한 건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어유. 이것 하려고 내가 세상에 나왔구나. 그전에는 굽이굽이 살았는데, 노래만큼은 20년이나 했잖유."

그는 "내가 굴곡진 인생을 배운 뒤에 가수를 하니까 다른 가수들과 달랐던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새 앨범에는 그의 대표곡 '허허바다'가 다시 녹음돼 실린다. 지난 6월 세월호 참사 추모공연에서 이 노래를 불렀을 때 "이럴 때 부르라고 나온 노래구나" 하고 생각했다. "살아도 산 것이 없고/ 죽어도 죽은 것이 없네/ 해미가 깔린 새벽녘/ 태풍이 지나간 허허바다에/ 겨자씨 하나 떠 있네" 하는 가사에 이어 "야아― 야아―" 하고 허공에 외치는 장사익의 노래는 원(怨)을 달래는 한판 굿이다.

그는 10월 30~3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시작으로 전국 7개 도시 공연에 나선다. "나는 아흔 살까지 갈라구유. 삐걱삐걱하면서. 죽음을 앞에 두고 노래하는 게 얼마나 재미있을지, 흥미롭게 기다려유. 가늘고 길게 가야 돼, 우덜은. 스포츠처럼 굵고 짧게 가면 안 되쥬." (02)396-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