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한 거울, 세상을 담다

거대한 빙하에서 떨어져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날카로운 얼음 조각처럼 뾰족한 거울 조각이 길이 33m, 폭 18m, 높이 7m 대형 전시실의 바닥에 흩어져 있다. 작은 거울은 또 다른 거울을 만나고, 그 거울에 맺힌 형상들은 끝없이 반복된다. 규모에 압도되고, 규모를 일궈낸 디테일에 시선이 머물며 또 한 번 감탄이 새나온다.

30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4: 이불'전에 설치된 이불(50·사진)의 신작 '태양의 도시 Ⅱ'이다. 이불은 1990년대 후반부터 뉴욕현대미술관(MoMA),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파리 퐁피두아트센터 등에서 전시를 열어온 한국의 대표적인 설치·퍼포먼스 작가다. 해외에서 더욱 빛났던 작가는 이번 국내 전시에서 딱 두 점의 대형 작품에 지금껏 자신이 보여준 예술의 정수(精髓)를 담아냈다. 2000년대 중반부터 개인의 기억과 경험, 성찰을 반영해 만들었던 대규모 설치 작업 '나의 거대서사' 시리즈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태양의 도시 Ⅱ'가 거울로 수평의 무한 확장을 보여줬다면, 또 다른 작품 '새벽의 노래 Ⅲ'는 수직성을 강조한 작품이다. 15m 높이 천장에 알루미늄 등 금속으로 만든 설치물이 매달렸다. 한 시간에 한 번씩 안개 분사기가 연기를 뿜어낸다. 설치물 전체가 형태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뿌연 안개에 휩싸였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제 형태를 드러낸다. 어느 하나 같은 모습이 없는 인생의 편린처럼 매순간 다른 장면이 연출된다.

"내가 경험한 것들을 작품으로 추구했다. 대중이 작품을 일일이 이해하기보다는 겪기(경험하기)를 바란다." 작가의 희망이다. 전시를 기획한 김형미 학예연구사는 "내용, 과정, 스펙터클한 규모를 볼 때 작가가 문학으로 따지면 장편으로 돌입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마침 지금 광주비엔날레에선 작가의 초기작으로 누드 차림의 작가가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충격적 영상인 '낙태(1989)'가 전시 중이다. 작가 인생의 처음을 장식했던 초기작과 가장 마지막 작품을 비교해 관람하길 권한다. 작가 자신도 "양쪽 끝에 놓인 작품 사이의 거리에 어지러울 정도"라고 할 정도로 그간 작가가 시도해온 길은 변화무쌍하다.

이번 전시는 현대자동차가 10년간 매년 한 명의 중진 작가를 지원하는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의 첫 전시다. 내년 3월까지 열리는 이번 프로젝트에 지원된 예산은 7억원. 단일 작가에 대한 지원으로는 이례적 규모다. 작가 개인의 입장에선 일생의 기회지만, 한 작가에게 지나치게 많은 금액이 쏠렸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대해 현대자동차 한 관계자가 말했다. "그간 백남준·이우환 등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한국 작가들은 해외 예술계의 아우토반을 통해 성장했다. 프리미어리그, 분데스리가로 박지성·손흥민 같은 선수가 진출한 것과 같은 논리다. 우리 작가들이 세계로 뻗어갈 수 있는 우리 자체의 아우토반을 만드는 것, 그게 프로젝트의 취지다." 문의(02)3701-9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