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아시아 미술 또한 변방에서 중심으로 자리를 옮겨가고 있다. 최근 세계 미술이 주목하고 있는 아시아 현대 미술의 히스토리와 대표적인 작가들을 만나보자.
다산쯔의 장밋빛 나날과 폭락
10여 년 전인 2003년 겨울, 북경 다산쯔(Dasanzhi, 일명 798 예술구) 에는 한때 일본을 대표하던 동경화랑이 BTAP(Beijing Tokyo Art Project)라는 이름으로 이 지역의 첫 화랑으로 문을 열었다. 다산쯔는 중국의 개혁, 개방 이전에는 군수물자를 만드는 공장지대였으나 한동안 별 용도 없이 방치되다 젊은 미술가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공장을 임대하면서 작가 작업실로 사용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다산쯔는 당시 세계적 경기호황과 중국미술에 대한 큰 관심으로 불과 4~5년 만에 화랑만 해도 100여 곳이 넘는 중국을 대표하는 예술구가 되었다. 벨기에의 UCCA, 미국의 페이스갤러리, 이탈리아의 갤러리콘티누아 등의 대형 다국적 갤러리들과 프랑스, 스페인, 홍콩 등의 몇몇 화랑도 질세라 798예술구의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큰돈이 몰리고 많은 사람의 이목이 집중되던 이곳은 마치 장밋빛 미래가 보장된 미술계의 유토피아 같았다. 2004~2005년경에 5천만원 정도 하던 작품값이 2~3년 뒤에는 홍콩경매에서 1백억 원이 넘을 정도로 폭등했다. 그것도 인기 작가들의 작품은 도무지 살 수가 없었고, 다행히 운이 좋아 작가를 만나 작품을 주문하더라도 몇 년은 기다려야만 했다. 대부분 작가들의 작업실은 매우 넓고, 여러 명의 조수가 있었으며, 작업실 앞에는 비싼 외제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낮에 조수들과 주문받은 작품을 제작하고, 저녁에는 또래의 작가들과 비싼 저녁식사를 하고, 주변 카페에서 맥주와 커피를 마시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2008년 리먼사태로 촉발된 세계적 경제 위기는 가장 가능성이 큰 이곳마저도 시들게 했다. 많은 화랑이 문을 닫았으며, 그렇게 전시가 활발하던 곳이 일부 화랑을 제외하고는 변변한 전시조차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당시 몇 년 만에 폭등했던 작가들의 작품은 단 1년 만에 70~80% 폭락했으며, 화랑에서는 작품의 거래가 끊기고, 대다수의 작가가 몇 년간 단 한 점의 작품도 판매하지 못했다. 많은 작가가 작품 활동을 그만두고 전업하거나 수년 전 자신이 갓 시작했던 좁은 작업실로 이사를 가야만 했다. 저녁에 카페에 모여 있던 많은 작가도 사라졌다.
단색화로 다시금 주목받는 한국 미술
온탕과 냉탕 사이를 오간 건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2007년,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이라던 미술시장은 채 1년도 못 되어 거래량이 급격히 줄어들고, 작품가격은 곤두박질쳤다. ‘미술’ 비슷하기만 해도 모든 것이 팔리던 시절에서 아무 것도 팔리지 않는 시절로 변한 것이다. 더군다나 큰 사회적 이슈가 된 사건마다 미술품이 등장했다. 미술품은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으거나 빼돌리는 가장 부도덕한 수단이 되었다.
그 후 몇 년째 침체해 있던 국내 미술시장이 최근 한국 단색화로 뜨겁다. 바젤, 홍콩 등 해외의 큰 아트페어에서나 국내 메이저 화랑에서의 개인전 때도 단색화는 거의 다 팔렸다고 한다. 시장은 미래에 대한 기대에 반응한다. 하물며 미술품은 매우 비싸기도 하고,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물건도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성향이 매우 강하다. 미술품은 미래에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가격이 오르고 판매량이 늘어나는 것이다.
국내에서 단색화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해외 시장의 트렌드와 관련이 깊은 듯하다. 최근 몇 년 동안 뉴욕 미술계에서 일본 미술에 대한 관심은 거의 정점에 가깝다. 기억나는 몇 개의 미술관 전시만 하더라도 구겐하임에서 열린 이우환전과 구체파(具體派)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동경-새로운 아방가르드>전, 그리고 크고 작은 미술관의 브랜치에서 열린 일본의 현대미술전 등을 들 수 있다. 당연히 이 전시들의 중심은 일본의 구체파나 모노하(物派)다. 미술시장에서 요시하라 지로, 시라가 카츠오 등의 구체파 작가들의 작품은 이미 가격이 많이 올랐고, 모노하 작가들에게도 많은 화랑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 구체파나 모노하 작가들에 대한 인기가, 많은 부분에서 유사한 한국 단색화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되는 듯하다.
물론 이전에도 뉴욕의 현대미술관, 파리의 퐁피두 등에서 대규모의 일본현대미술 전시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큰 관심의 대상이 되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동아시아 3국이 가진 경제력은 그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또 한편으로는 자본이 동반된 동아시아에 대한 외부의 첫 관심은 10여 년 전이었는데, 이때는 죄다 이미지를 그리는 중국 팝스타일의 미술이었다. 지금은 그때와는 다른 스타일의 작품, 그리고 중국이 아닌 한국과 일본의 미술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미 발빠른 뉴욕과 LA의 화랑들이 일본과 한국의 몇몇 작가와 전시를 하거나 계약을 하기 시작했다.
시장의 측면에서 보자면 일본 모노하보다는 한국 단색화가 유리해 보인다. 대부분 모노하 작가들의 작품이 사고팔기 어려운(재료의 원성질에 주목, 땅을 파놓았다든지, 유리창에 나무토막 하나를 걸쳐놓았다든지, 아니면 깨진 유리를 바닥에 놓는 형식으로 작품 제작) 작품들이 대부분이라 오히려 얌전한(?) 한국 단색화 작가들이 유리해 보이기도 한다.
아시아의 정체성과 철학을 살린 작품이 인기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눈여겨볼 만한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작가를 소개한다면 먼저 한국은 1970~80년대에 한국 현대미술의 주류였던 단색화 작가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비판을 담은 평가가 있지만 이들 작가들이 이룬 성과는 전후 한국이 경제에서 이룬 성과만큼이나 놀랍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작품은 미니멀 작품이나 모노하 작품과 형식이나 출발이 유사해 보여도 분명 그들과는 다른 동양 자연관을 바탕으로 직관적이고, 선험적이며, 정신적인 세계로 이끈 독자성을 평가받고 있다.
이미 발빠른 애호가들은 최근 윤형근, 정상화, 하종현 등의 작품 값이 많이 올랐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이들 외에도 한지의 재료인 닥을 사용해 자신과 재료를 합일시키는 정창섭과 리듬감 있는 긋기의 반복 행위를 통해 물질과 행위, 자신을 합일시키는 박서보, 바탕과 그려진 이미지를 일체화시키는 김창열, 자유로운 붓질의 스트로크로 프레시한 감각을 보여주는 이강소, 집요한 연필긋기를 통해 원재료의 물성을 탈각시키는 최병소 등의 회화와 입체로는 심문섭, 박석원 등이 있다.
일본 출신의 작가 중에는 스가 키시오(Suka Kishio)와 카와마타 타다시(Kawamata Tadashi)를 들 수 있다.
스가는 모노하 작가 중 현재까지 당시 모노하의 생각을 가장 꾸준하게 견지하고 발전시켜온 작가라 할 수 있다. 그는 세계를 ‘연결되어 있는, 혹은 기대어 있는’, 최근에는 ‘모여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필자가 만나본 작가 중 자신의 세계관과 작업이 가장 선명하게 일치하는 작가로 생각되었다. 2~3년 전 런던에 있는 테이트 모던이 그의 대형 설치작품을 매입하여, 그 미술관의 매우 중요한 섹션에 디스플레이해놓았다.
또 한 명의 작가인 카와마다 타다시는 홋카이도 출신으로 현재 60대 초반인데 20대에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 대표작가로 뽑힐 정도로 젊었을 때부터 주목받은 작가이다. 현재는 파리에 거주하고 있으며, 에콜 드 보자르의 교수를 하고 있다. 이 작가의 작품은 설치 미술이라 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건축이라 하기도 어려운, 건축과 미술의 중간 정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출신 작가로는 파리에서 작업하다 몇 년 전 쉰 살경에 요절한 천재인 첸젠(Chen Zen)과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황용핑(Huang Yongping), 작품에 대한 발상이 그저 놀랍기만 한 슈빙(Xu Bing),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차이궈치앙(Cai GuoQiang)과 아이웨이웨이(Ai Weiwei), 그리고 루칭(Lu Qing), 주진스(Zhu Jinshi), 왕루옌(Wang Luyan) 등을 추천하고 싶다. 이들은 2000년대 소위 4대 천황으로 불리던 장샤오강, 유에민준, 팡리준, 그리고 쩡판츠 등을 중심으로 세계를 휩쓴 중국적인 팝 스타일의 작품과는 다른 중국의 전통, 철학과 그들이 경험한 서구의 미적 체험과 방법이 결합된 작품을 하고 있다(이 작가들 대부분이 유학했거나 현재 해외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참이나 철이 지난 단색화가 ‘이제야’ 혹은 ‘왜’ 주목받느냐고 의아해하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 단색화에 대해 스스로 여러 관점으로 깊이 있게 연구해보았는지, 또 한국 현대미술이 해외에서 언제 이렇게 주목받을 기회가 있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