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0.01 09:53

This Man | 뮤지컬 ‘명성황후’, ‘영웅’의 연출자 윤호진

대형 뮤지컬 ‘명성황후’, ‘영웅’을 연출하며 한국을 넘어 세계를 무대 삼아 활약해온 뮤지컬 연출자, 윤호진 감독이 이번엔 기획 단계부터 세계시장을 겨냥한 작품, 뮤지컬 ‘보이첵’을 들고 관객 앞에 나타났다.

청년 [명사] 신체적·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람. 윤호진 감독과의 인터뷰를 마친 뒤 문득 청년의 사전적 의미가 궁금해져 사전을 뒤졌다. 주민등록상으로는 60대 중반의 나이가 분명하지만 얘기를 나눈 뒤, 뜨거운 피를 가진 청년과 만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험이라는 단어와는 완전한 결별을 고하는 이들이 속출하는 나이, 그는 여전히 꿈꾸고 있었고 유연한 사고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새로운 도전! 세계 최초로 뮤지컬로 제작된 독일 천재 작가 뷔히너의 희곡, ‘보이첵’. 40년간의 꿈을 8년간 준비해 세상에 내놓은 지금, 윤호진 감독의 소회를 들어봤다.

365일 꿈을 빚는 남자

‘보이첵’은 어디에서 뚝 떨어진 작품이 아니에요. 1970년대 초 독일 브뤼케 극단의 연극으로 처음 접한 뒤 받은 충격을 잊지 않고 간직해왔거든요. 실질적인 준비를 시작한 건 8년 전이고요. 제 머릿속에는 항상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들어 있는데 하나만 끌고 나가는게 아니고 하나가 앞서가면 뒤에 가는 게 또 있는 식으로 풀어가는 편이죠. 그래서 뭔가 하나를 완성하는 데 대략 5년 이상은 걸리는 편이에요. 줄지어 있는 아이디어 중 꽤 완성도가 높은 것 중 하나가 바로 최윤호 작가의 ‘몽유도원도’예요. 예전에도 했던 작품인데 다시 양방언 씨가 작곡을 하고 작품도 새로 쓰고 있어요. 이 작품은 중국과 일본 관객에게도 통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작품을 들고 꼭 일본과 중국 땅을 밟을 생각입니다.

쿨한 세대에게 전하는 뜨거운 사랑 이야기

뮤지컬 ‘명성황후’, ‘영웅’의 연출자 윤호진

‘보이첵’은 세계 연극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에요. ‘보이첵’ 이전까지만 해도 연극의 주인공은 전부 귀족들이었거든요. 보이첵을 통해 처음으로 사회에서 가장 말단에 있는 사람이 연극의 주인공이 된 거예요. 저는 보이첵이 보여주는 순도 99.99% 사랑과 열정에 매료된 것 같아요. 요새는 만나고 헤어짐이 예전처럼 아픔을 수반하지 않잖아요. 아주 쿨한 만남과 이별. 그게 요즘 사람들의 사랑이죠. 그런 의미에서 보이첵은 요새 사람들 눈에는 ‘찌질이’로 보일 것 같아요. 하지만 관객들이 이 순도 높은 감정에 반응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극이 워낙 드라마틱하기도 하고요. 보통의 공연에서는 슬픈 감정이 찾아오더라도 적당히 반응하지만, ‘보이첵’을 본 관객들은 함께 빠져들어서 오열하게 될 것 같아요. 그게 ‘진짜’가 가진 강력한 힘이죠. 그동안은 연극으로만 선보인 이 작품이 이번에 세계 최초로 뮤지컬로 재탄생하게 됐는데, 음악이 주는 엄청난 힘과 작품 본연의 에너지가 만나 강력한 시너지를 낼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년의 독자들에게 던지는 조언

인생의 맛을 가장 실감하며 살 수 있는 시기가 40대 중·후반인 것 같아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열정도 얻고 힘도 덜 들이고 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제 꿈은 원래 영화 감독이었어요. 사람들은 내가 나이도 많이 먹었고 또 뮤지컬 감독으로도 성공을 이룬 것 같으니까 영화감독의 꿈은 포기했겠지 생각하겠지만 전 아직도 그 꿈을 버리지 않고 있어요. 끊임없이 꿈꾸고 노력하고 살다 보니 나이가 주는 한계 같은 건 느껴지지도 않아요.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는 나이가 됐지만 어린 친구들이 내게 자리를 양보하면 혼을 내죠. 열정도 신체적인 에너지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저처럼 좋아하는 일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실행하세요. 또 그 꿈을 위해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는 편인데 운동을 하면서 작품 구상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헬스 그 이상의 효과를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윤호진이 예상하는 ‘앞으로의 윤호진’

꾸준히 작품을 만들고 있을 거예요. 둘째 아이가 내 밑에 들어와 일을 배우고 있는데 든든한 동반자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에요. 그 아이는 지금 뮤지컬 ‘완득이’ 팀에서 일하고 있는데 같이 상의할 것도 점점 많아지고 앞으로 함께 해나갈 일들도 기대가 됩니다. 첫아이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는데 저에게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로 뮤지컬을 만들어달라고 하더군요. ‘명성황후’, ‘영웅’에 이어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를 일본 3부작으로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도 있는데 너무 아픈 이야기라 쉽게 시작하지 못하고 있네요. 그리고 내년에 20주년이 되는 ‘명성황후’가 요즘 정서에 맞게 전면 개편을 앞두고 있어요. 이렇게 계속 시대의 흐름에 맞는 작품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간다면 푸치니의 오페라처럼 세대를 이어 관람하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나저러나 일단 관객들에게 며칠 후면 첫선을 보이게 될 ‘보이첵’이 잘돼서 웨스트엔드와 독일 무대를 누비는 게 가장 크게 기대하는 제 미래의 모습입니다. 많이들 보러 와주셨으면 좋겠네요.


처절하고 순수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 보이첵

 뮤지컬 ‘보이첵’

가난한 말단 군인 ‘보이첵’. 그에게 있어 유일한 꿈은 사랑하는 아내 ‘마리’, 아들 ‘알렉스’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사는 것뿐이다. 그는 가족을 부양할 돈을 벌기 위해 생체 실험에 지원하고 군의관의 명령에 따라 매일 완두콩만 먹으며 살아간다. 마을이 축제로 떠들썩한 어느 날, 마리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던 군악대장은 그녀를 가짜 목걸이로 유혹하여 하룻밤을 보낸다. 마리의 부정을 알게 된 보이첵은 걷잡을 수 없이 광기에 휩싸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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