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이 만들었다, 최고의 칼

일본도(日本刀) 명인 후지와라 가네후사(藤原兼房·57)씨가 시뻘겋게 달궈진 쇳덩어리를 화로에서 꺼내 모루에 얹었다. 후지와라씨의 아들을 포함한 제자 셋이 순서대로 쇳덩어리를 망치로 내리쳤다. 후지와라씨가 늘어난 쇳덩어리를 반으로 접자 제자들이 메질하는 과정이 반복됐다. 도쿠가와 가문에 일본도를 대대로 납품해온 공방의 25대 후계자인 후지와라씨는 "서로 다른 성격의 쇠를 두드려 합치는 데 일본도의 비밀이 있다"며 땀을 닦았다.

일본도는 무엇이든 단칼에 베는 날카로움과 부러지지 않는 내구성을 함께 지녔다. "단단한 철은 날카롭지만 잘 부러집니다. 부드러운 철은 금세 무뎌지지만 부러지지 않지요. 강철과 연철을 종이처럼 얇게 두드려 합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합니다." 후지와라씨가 완성된 일본도를 칼집에서 꺼냈다. 푸르스름한 물결무늬가 칼날에 너울거렸다. 후지와라씨는 "서로 다른 강도의 철이 접합된 부분에 이렇게 파도 같은 무늬가 생겨난다"고 말했다.

후지와라씨의 대장간이 있는 기후(岐阜)현 세키(關)시는 일본에서 '칼의 도시'로 불린다. 800년 전인 13세기 모토시게(元重)라는 유명한 가타나카지(칼 대장장이)가 세키로 이주하면서부터다. 칼의 재료인 사철(砂鐵)과 숯의 재료인 나무, 쇠를 담금질할 때 필요한 물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한때 대장간이 300개가 넘을 만큼 세키는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17세기 초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일본 열도를 안정시키면서 칼 수요가 급감했다. 진짜 위협은 메이지유신이었다. 메이지 정부는 1876년 폐도령(廢刀令)을 내려 사무라이들에게 일본도 착용을 금지했다. 손님을 통째로 잃은 가타나카지들은 본격적으로 다른 쇠붙이 제작에 나섰다.

이 무렵 많은 날붙이(커틀러리) 제조업체가 세키에 들어섰다. 이 중 하나가 카이(貝印)다. 1908년 창업한 카이는 포켓나이프로 출발해 손톱깎이, 면도기, 가위, 주방칼 등 철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로 성장한다.

1990년대 말 카이는 최고급 주방칼을 내놓기로 결심하고 일본도로 눈을 돌렸다. 카이에서 만드는 최고급 주방칼 라인 '슌(旬·Shun)'은 첨단 공장에서 생산하지만 제작 원리는 전통 일본도와 같다. 심이 되는 단단한 쇠를 가운데 두고 강도가 다른 여러 쇠를 33번 겹쳐서 하나로 두드린다. 슌 주방칼은 2000년 출시돼 매년 50만 자루가 프랑스 갤러리라파예트백화점, 영국 해러즈, 미국 윌리엄&소노마 등 세계 고급 주방용품점에서 판매되고 있다. 슌 라인 생산 공장 대표 오노 다케시(大野武志·60)씨는 "전통 기술을 이어받아 발전시켜 칼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칼 名人의 '부엌칼 고르는 법' -가와이 히사키 카이 공장장

칼자루를 손에 쥐고 들어본다. 좌우앞뒤 균형이 잘 맞아야 잘 썰리고 힘이 덜 든다. 칼자루와 칼날이 만나는 지점을 손가락에 걸쳐 살짝 들어 올려본다. 한쪽으로 기울거나 떨어지지 않으면 균형이 좋은 칼이다. 칼은 녹슬지 않지만 절삭력이 떨어지는 스테인리스나, 날카롭지만 녹이 슬기도 하는 고(高)탄소강으로 주로 만든다. 명품 주방칼 업체들은 대개 둘을 배합해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