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시행前 계약 끝난 일부 상가, 권리금 한푼 못 받고 쫓겨날 우려

서울 종로에서 한식집을 운영하는 손모(여·46)씨는 2년 전 가게를 열면서 전(前) 세입자에게 줬던 권리금 1억2000만원을 고스란히 날릴 판이다. 계약 만료를 두 달 앞둔 지난 7월 건물주가 "가게를 무조건 비워달라"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손씨는 정부가 지난달 24일 앞으로 모든 상가 세입자에게 5년 임대차 계약기간을 보호한다고 발표하자 한 가닥 희망을 걸어봤다. 하지만 손씨처럼 새 법안 시행 이전에 계약이 만료되는 경우는 권리금을 보호받을 수 없다. 그는 "2년 만에 식당이 겨우 자리를 잡았다"면서 "지금으로선 권리금 한 푼 못 받고 쫓겨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상가 권리금을 보호하는 '상가건물임대차 보호법' 개정안은 현재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올 연말까지 국회 처리를 완료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손씨처럼 법안 시행 전에 임대차 계약이 종료되는 세입자들의 권리금은 보호받을 수 없다는 게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 법안은 국회를 통과한 시점에 효력을 발휘해 그 이후에 계약이 종료되는 상가 임대차 계약만 보호하게 된다. 법안 구성에 참여한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의 한 관계자는 "법 시행 전에 계약 기간이 종료된 임대차 계약까지 소급해 보호할 경우 위헌(違憲) 소지가 있다는 견해가 우세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세입자들을 위해 법안 통과일이 아닌 정책 발표일을 기준으로 소급 적용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정부와 새누리당은 작년 11월 취득세 영구 인하를 결정하면서 정부가 대책을 발표한 날(8월 28일)로 소급 적용한 전례(前例)가 있다.

건물주가 건물을 재건축하거나 리모델링하기를 원할 때 세입자의 권리금을 보호할 의무를 면제한 것도 일부 시민단체의 반발을 사고 있다. 김영주 변호사는 "실제 건물주가 상가 재건축을 핑계로 세입자를 내쫓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계약기간 5년을 보장하더라도 현행 제도처럼 계약기간에 건물주가 마음대로 임대료를 올릴 수 있도록 한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권리금 보호 제도 시행 이후 건물주들이 세입자를 마음대로 못 내보낼 경우 임대료를 대폭 올리는 방법으로 압박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일단 법을 하루빨리 제정하고 문제점을 고쳐 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법안 통과가 지연될 경우에는 세입자와 건물주 간 권리금 마찰이 더욱 심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승종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부 우려 때문에 법 통과가 늦어진다면 선량한 세입자들의 피해만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