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처럼 단단하던 가난을 깨고… 루빠의 미소

"글도 모르고 가난하니까 돌을 깨야 해요. 이게 내 운명이에요."

2007년 8월 24일 조선일보 1면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이 독자들을 먹먹하게 했다. 무표정한 얼굴에 체념과 분노가 뒤섞인 눈빛을 한 여덟 살 소녀. 가난 때문에 네 살 때부터 채석장 돌무더기 속에서 망치질을 해야 했던 네팔 소녀 루빠 마자르였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50㎞ 정도 떨어진 강변 천막촌에 살며 돌을 깨 파는 루빠의 가족이 하루에 손에 쥐는 돈은 100루피(당시 가치로 1500원)였다. 루빠는 "돌을 깨지 않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놀고 싶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루빠의 사연이 보도된 이후 당시 조선일보, 후원 기관인 한국기아대책에는 루빠 또래의 초등학생부터 칠십 노인까지 2만명이 넘는 후원의 손길이 밀려왔다. 그중엔 교도소에서 신문을 보고 딸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는 여성 수감자도 있었다.

그로부터 7년. 15세가 된 루빠가 최근 한국 후원 기관을 통해 편지를 전해왔다. '저와 마을의 많은 친구를 도와주신 모든 분, 특별히 제 어려운 형편을 처음으로 한국에 알려주신 조선일보 가족들 모두에게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밀려든 온정이 불러온 첫 번째 변화는 '이사'였다. 걸어서 40분 거리에 있던 학교 옆으로 온 가족이 옮겼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아이들에게 일을 시키고 싶어 했던 루빠의 부모는 후원 기관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빚을 모두 갚았다. 루빠와 그의 오빠는 난생처음 학교에 다니게 됐다.

루빠의 사연이 전해진 덕에 마을 580명의 아이들에게도 후원이 이어졌다. 마을에 컴퓨터실과 도서관이 들어섰고 아이들은 쌀, 교복, 구급상자를 받았다. 한국의 봉사자들은 아이들에게 영어, 컴퓨터, 음악, 스포츠를 가르쳤다.

돌 깨는 것이 운명이라 믿었던 루빠는 이제 간호사를 꿈꾸고 있다. 오른팔 없이 태어난 여동생을 어떻게든 고쳐주고 싶기 때문이다. 현재 8학년(우리의 고교 1학년)인 루빠는 2년 후 졸업하면 간호학교로 진학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뒀다.

루빠는 "우리 같은 아이들은 배우지 않으면 계속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후원자들 덕분에 공부를 열심히 하면 신분과 운명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루빠는 오는 24일 열리는 기아대책 창립 25주년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에 온다. 자신의 운명을 바꾼 후원자들을 만나 직접 감사의 마음을 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