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인의 사진 포착] 휜 등과 가슴, 이젠 마음껏 뽐내며 노래합니다
입력 : 2014.10.15 03:01
[키 작은 소리꾼 박공숙]
6세 때 사고로 키 140㎝에서 멈춰… 한지공예·뜨개질… 은둔의 긴 시간
고난 속에 늘 떠오른건 엄마품 민요, 명창 찾아가 노력 끝 경기민요 전수
몇해 전엔 한복 미인대회에도 출전
경기도 파주에 사는 박공숙(66)은 여섯 살 되던 1954년 어느 날 놀이터에서 놀다가 미끄럼틀에서 머리부터 떨어졌다. 부산에서 잘나가는 부잣집 7남매 가운데 둘째였다. 척추가 부러진 박공숙은 가슴과 등이 휘고 성장은 140㎝에서 멈췄다. 철들 무렵 자기를 보는 세상 눈총을 의식하게 되면서 박공숙은 마음을 닫았다. 딸을 업고서 엄마는 '노들강변'을 자장가로 들려주곤 했다. 잠에서 깬 딸은 노래를 부르며 머리를 빗고, 설거지를 하고, 비질을 하고, 걸레질을 했다. 누가 놀러 와서 "노래 불러봐" 하면 엄마 뒤에 숨어 있던 소녀 입에서 자동으로 민요가 흘러나왔다. 박공숙이 말했다. "칭찬을 받으며 꿈을 꿨지. 크면 초가집 짓고 촛불 켜 놓고 밭일 끝난 농부들한테 노래 가르치며 살아야겠다고."
세월이 아득하게 흘러, 2014년 박공숙은 중요무형문화재 57호 경기민요 이수자다. 사람만 보면 얼굴 붉히며 뒤로 숨던 계집아이가 휜 등을 보이고 춤을 추며 노래를 하는 소리꾼이 되었다.
서른 살 되던 해 박공숙은 대학 간 동생들 뒷바라지하겠다고 서울로 갔다. 나이 스물 될 때까지 자기 병원비 대느라 피폐해진 집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난생처음 사회와 만났다. 직장 생활도 해봤지만 1980년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장애인이 살 만한 도시가 아니었다. 그래서 한지 공예를 배웠고 뜨개질을 배웠다. 사람 덜 만나며 돈 벌 수 있고 훗날 자기 같은 장애인들 가르쳐줄 수도 있으니까.
세월이 아득하게 흘러, 2014년 박공숙은 중요무형문화재 57호 경기민요 이수자다. 사람만 보면 얼굴 붉히며 뒤로 숨던 계집아이가 휜 등을 보이고 춤을 추며 노래를 하는 소리꾼이 되었다.
서른 살 되던 해 박공숙은 대학 간 동생들 뒷바라지하겠다고 서울로 갔다. 나이 스물 될 때까지 자기 병원비 대느라 피폐해진 집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난생처음 사회와 만났다. 직장 생활도 해봤지만 1980년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장애인이 살 만한 도시가 아니었다. 그래서 한지 공예를 배웠고 뜨개질을 배웠다. 사람 덜 만나며 돈 벌 수 있고 훗날 자기 같은 장애인들 가르쳐줄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자꾸만 엄마 노래가 떠오르더라는 것이다. 그녀가 말했다. "사는 게 힘들수록 노래가 더 생각이 났다. 화가 치밀어 올라, 노래를 안 하면 내가 없어질 것 같은 거다." 어느 날 서울 종로에 있는 국악학원에 함께 다니던 친구가 말했다. "문화재 선생 찾아가서 제대로 배워라." 신 내린 여자처럼, 경기민요 기능 보유자 이은주 명창을 찾아갔다. 새벽이면 도봉산 바위에 서서 소리를 공부했다. 힘든 몸 끌고 버스 갈아타며 열심히 다녔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눈총은 여전했다. 예쁜 여자들만 먼저 무대에 서는 것 같아 울기도 많이 울었다. "다 내 탓이다. 내가 미스코리아만큼 예뻤다면 그러지 않겠지, 다 내가 부족하니까…."
그 사이에 결혼을 했다. "시집갔다가 소박맞고 쫓겨나는 불효녀는 되지 않겠다"며 절대 불가를 선언했던 결혼이다. 무학(無學)에 장애인. 스무 번 맞선 끝에 만난 가장 조건 나쁜 남자였다. 박공숙은 "이 남자라면 내가 도와서 가장을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고 했다. 1987년이다. 이듬해 유산(流産)을 한 번 하고 딸을 낳았다. "여자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유산도 기뻤고, 기저귀 갈면서 아기 몸에 이상 없는 거 보고 기뻐서 울었다"고 했다. 경기도 파주로 이사해 낮에는 식당일을 했고 밤에는 공예와 민요를 가르쳤다. 딸 키우느라 민요 배우기는 잠시 중단했다.
2000년 딸 혜림이가 성장하고서 또 이은주 명창을 찾아갔다. 파주에서 서울까지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다녔다. 2004년 박공숙에게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전수증이 수여됐다. 박공숙은 지금 경기민요보존회 파주 지부장이다. 그렇게 먼 길 돌아왔다. 2010년 평생을 한(恨) 품고 살던 어머니가 하늘로 갔다. "하도 막막해 몇 달째 앉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하며 정신줄 놓고 살았다"고 했다. 그런 그녀에게 동네 지인이 임진강 황포돛배 앞에서 정기 공연을 제안했다. 박공숙이 말했다. "무대에 섰는데, 강 건너 개성 송악산을 보니 나도 모르게 내가 '노들강변'을 부르는 것이다." 엄마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서, 신명 나야 할 장단을 눈물 펑펑 흘리며 불렀다고 했다.
박공숙은 "그날 이후 더 이상 엄마를 생각해도 서럽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엄마에 대한 해원(解寃)은 그렇게 불쑥 찾아왔다. 2년 뒤 나이 예순을 넘기고 한 한복 미인대회에 출전했다. 청사초롱 곱게 들고 사뿐사뿐 걸어서 무대 중앙에 나아가 한 바퀴 돌았다. 풍성한 한복 선(線) 아래 휜 등과 가슴을 마음껏 뽐냈다.
공연을 할 때면 사람들은 묻는다. 어떻게 여기까지 사셨냐고. 한때 세상과 절연했던 명창이 말한다. "신발 수백 켤레 버려가며 헤쳐 온 인생이다. 가난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기에 다 이루었다"라고. 그녀의 공연은 숙연한 강연이 반이고 신명 나는 소리가 반이다. "10년째를 맞는 내년 정기공연 때 꽃가마 타고 제자들 배웅받으며 무대 물려주는 일만 남았다"고 했다. 그때 회전무대가 생겨서 한복 입고 춤사위 던지는 자기 모습 다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사이에 결혼을 했다. "시집갔다가 소박맞고 쫓겨나는 불효녀는 되지 않겠다"며 절대 불가를 선언했던 결혼이다. 무학(無學)에 장애인. 스무 번 맞선 끝에 만난 가장 조건 나쁜 남자였다. 박공숙은 "이 남자라면 내가 도와서 가장을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고 했다. 1987년이다. 이듬해 유산(流産)을 한 번 하고 딸을 낳았다. "여자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유산도 기뻤고, 기저귀 갈면서 아기 몸에 이상 없는 거 보고 기뻐서 울었다"고 했다. 경기도 파주로 이사해 낮에는 식당일을 했고 밤에는 공예와 민요를 가르쳤다. 딸 키우느라 민요 배우기는 잠시 중단했다.
2000년 딸 혜림이가 성장하고서 또 이은주 명창을 찾아갔다. 파주에서 서울까지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다녔다. 2004년 박공숙에게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전수증이 수여됐다. 박공숙은 지금 경기민요보존회 파주 지부장이다. 그렇게 먼 길 돌아왔다. 2010년 평생을 한(恨) 품고 살던 어머니가 하늘로 갔다. "하도 막막해 몇 달째 앉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하며 정신줄 놓고 살았다"고 했다. 그런 그녀에게 동네 지인이 임진강 황포돛배 앞에서 정기 공연을 제안했다. 박공숙이 말했다. "무대에 섰는데, 강 건너 개성 송악산을 보니 나도 모르게 내가 '노들강변'을 부르는 것이다." 엄마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서, 신명 나야 할 장단을 눈물 펑펑 흘리며 불렀다고 했다.
박공숙은 "그날 이후 더 이상 엄마를 생각해도 서럽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엄마에 대한 해원(解寃)은 그렇게 불쑥 찾아왔다. 2년 뒤 나이 예순을 넘기고 한 한복 미인대회에 출전했다. 청사초롱 곱게 들고 사뿐사뿐 걸어서 무대 중앙에 나아가 한 바퀴 돌았다. 풍성한 한복 선(線) 아래 휜 등과 가슴을 마음껏 뽐냈다.
공연을 할 때면 사람들은 묻는다. 어떻게 여기까지 사셨냐고. 한때 세상과 절연했던 명창이 말한다. "신발 수백 켤레 버려가며 헤쳐 온 인생이다. 가난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기에 다 이루었다"라고. 그녀의 공연은 숙연한 강연이 반이고 신명 나는 소리가 반이다. "10년째를 맞는 내년 정기공연 때 꽃가마 타고 제자들 배웅받으며 무대 물려주는 일만 남았다"고 했다. 그때 회전무대가 생겨서 한복 입고 춤사위 던지는 자기 모습 다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