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에 비친듯 빠진듯… 물구나무선 자작나무

눈을 먼저 두드린 대상은 물구나무선 자작나무일진대 가슴을 찬찬히 적시는 것은 나무를 품고 흐르는 물이다. 그림을 두고 좌에서 우로, 위에서 아래로 시선을 옮겨가면 평면에 갇혔던 물결이 빛의 방향에 따라 색을 달리하며 입체적으로 일렁인다. 정면에선 하늘빛 아침 풍경으로 보였던 수면이, 무릎 낮춰 올려다보면 황혼녘 호수처럼 볼그스레 빛난다.

화가 장태묵(48)의 풍경화는 이처럼 빛에 따라 색이 달리 보이는 아크릴 물감의 특성을 활용해 수면 아래 침잠(沈潛)하는 고요를 입체적으로 담아낸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자연의 풍경을 독창적으로 표현하는 작가의 기법에 주목해 2011년 프랑스 밀레미술관은 동양인 최초로 장태묵을 초대해 개인전을 열었다. 밀레의 대표작 '만종' 탄생 15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이었다.

관객의 시선에 따라 달리 보이는 그림. 작가는 이를 '변화하는 그림'이라 말한다.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장태묵의 개인전은 작가가 10여년 동안 천착해왔던 풍경화 '목인천강(木印千江)' 시리즈를 한눈에 보여준다. 목인천강, 즉 천 개의 강에 나무를 새긴다는 뜻이다. "자연은 아무리 반복해봐도 질리는 법이 없지만, 그림은 질리게 마련이다. 살아 있는 자연 같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시선과 빛에 따라 달리 보이는 그림을 생각했다." 작가는 '물에 비친 나무' 대신 '물에 빠진 나무'란 표현을 되풀이한다. 물에 비친 가짜 나무가 아니라 진짜 나무가 빠진 것 같은 이미지를 그렸다. 허구와 실체의 경계가 수면을 사이에 두고 모호하게 이지러진다.

그림 사이를 산책하다 보면 물안개에 싸여 농밀해진 자작나무 향이 눈으로 저며온다. 도심 속 힐링 전시다. 20일까지. 문의 (02)736-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