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이 서야 도로가 바뀐다] [4] 시커먼 유리창 뒤에 숨어 난폭 운전… 선팅 규제 강화, 국회의원들이 반대

지난 14일 오전 8시 30분쯤 서울 강남구 교보타워 사거리에서 짙은 선팅을 한 은색 아우디 차량이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직진 신호에서 급좌회전을 했다. 맞은편에서 직진해오던 차량이 깜짝 놀라 경적을 울리며 급정거했다. 검은 유리창 뒤에 숨은 아우디 운전자는 '사과'의 의미인 비상등도 켜지 않고 사라졌다. 조선일보 취재팀이 설문한 서울 지역 모범 운전자들도 "선팅 필름 뒤에 숨어 난폭 운전하는 사람들을 보면 넌더리가 난다"고 했다. 검은 선팅 필름이 보장해주는 익명성을 활용해 교통질서를 마음껏 짓밟는 고급 외제차 운전자들 때문에 강남 지역에서 운전하기가 두렵다는 사람도 있었다.

짙은 선팅은 운전자의 판단도 흐리게 한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짙은 선팅을 한 차량은 갑자기 사람이 뛰어드는 등의 돌발 상황에 반응하는 시간이 30% 이상 늦어진다. 가시광선 투과율이 58% 아래로 떨어지면 룸미러나 사이드미러를 통해서 보이는 사물의 거리 감각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특히 야간이나 비 오는 날 등 어두울수록 사고 위험성이 커진다.

짙은 선팅이 범죄에 악용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해 7월 경기도 오산시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조선족 김모(32)씨가 어린이를 태우고 달아난 사건이 있었다. 경찰은 "선팅된 차량 내부가 잘 보이지 않아 김씨를 붙잡는 데 시간이 지체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단속해야 할 경찰 등은 거의 손을 놓고 있다. 조선일보 취재팀이 동행한 불법 개조 차량 단속 현장에서도 단속반원들은 선팅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한 단속반원은 "선팅을 안 한 차량이 거의 없는 실정이라 단속하자고 나서면 교통대란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도 "비사업용 차량의 90%가 불법 선팅에 해당돼 일일이 단속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선팅에도 순기능이 있다는 일부 반론도 있다. 한 여성 운전자(32)는 "남성 운전자들이 너무 위협적으로 운전을 해 도로에 나오기 두려웠는데 친구 조언대로 짙게 선팅을 한 뒤 위협당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2005년 가시광선 투과율을 40~50%로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국회의원들이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반대했다. 결국 자동차 앞 유리 가시광선 투과율은 70%, 운전석 좌우 유리창은 40% 이상까지 허용하는 선에서 도로교통법이 개정됐다. 선팅을 엄격하게 규제하자는 움직임은 이후에도 수차례 있었지만 진전은 없었다. 경찰청 관계자는 "선팅 단속에 대한 국민적 합의 없이 적극적인 단속은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