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좋은 구경하러 잠시 먼저 간것"

천주교 대구대교구장을 지낸 이문희(李文熙·79·사진) 대주교가 최근 산문집 '저녁노을에 햇빛이 Ⅱ'(대건인쇄출판사)를 펴냈다. 2008년 식도암 수술을 받고 이듬해 말기암 환자를 돕는 호스피스 활동을 하며 펴낸 '저녁노을에 햇빛이'의 후속편이다. 책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한층 곰삭은 관조와 묵상이 배어 있다.

성직자로 평생을 살았어도 죽음에 대한 공포와 육체의 고통은 견디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식도암 수술을 받을 때 상상도 못할 내 고통을 참기 위해 내가 아는 순교자들의 처형 장면 두 가지를 머리에 담고 수술대에 올랐다." 그가 떠올린 것은 화형(火刑)과 열탕(熱湯)으로 숨진 일본의 순교자들이었다. 이 대주교는 그들의 순교에 대해 "하느님이 하신 일이라는 답으로밖에 해결될 수 없는 것"이라며 "그래서 하느님이 원하시면 나도 그렇게 참을 수가 있고, 또 그렇게 죽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놓는다.

호스피스 봉사에 나선 것도 소박한 이유에서였다. 절친하게 지냈던 박창신 몬시뇰이 암으로 투병하자 문병 다닐 겸 교육받기 시작했다. 동료의 병과 죽음 그리고 자신의 병과 죽음을 친구 삼은 것이다. 박 몬시뇰의 마지막 순간, 기계의 그래프는 '일(一)'자를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대주교가 손을 잡자 갑자기 그래프가 '출렁'했다. 그는 말한다. "내가 손을 대어도 멈췄던 맥박이 뛰는데 예수님이 손을 얹으시면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지 않겠는가?"

병을 겪으면서 "내 믿음이 이렇게 약하다는 것을 지금까지는 이토록 절실히 느끼지는 못했다"고 고백하고, 병원 앞에 얻은 오피스텔 창문 건너편에 하필이면 장례식장 간판이 걸려 있는 걸 보면서 "이 방에서 나가면 거기에 갈 것이라고 생각해본다"고 말한다. 어릴 때 "나는 고기보다 나물이 더 좋다"며 고기 반찬 그릇을 손자 앞으로 밀어주시던 할머니, 40년 전 부임지로 발령받은 아들 신부에게 건강 챙기라며 어머니가 담아주신 꿀에 잰 인삼 항아리를 보며 새삼 사랑의 의미를 되새긴다. 부활대축일을 맞아서는 "좋은 구경을 하러 좋은 곳에 가는 사람 보고 헤어졌다고 슬퍼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조금 더 있으면 볼 수 있다는 것만 알면 헤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죽음과 부활에 대한 묵상을 적었다.

이 대주교가 속편을 펴내게 된 것은 팔순을 맞아 주변에서 잔치 준비하는 걸 눈치챈 때문이다. 사랑의 계명을 전하는 책임을 지고 살아왔지만 "남을 구체적으로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물으면 대답을 못 하겠다는 것밖에 생각나는 게 없어서 초라해진 나를 보면서 작은 사랑의 표시라도 하고 싶어서" 갑자기 책을 내게 됐다고 한다. 그는 "나를 기억해주시는 여러분께 모자라는 내 사랑의 표시라고 생각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래야 하늘나라에서 나도 할 말이 있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책을 마무리했다. 노(老)사제가 보낸 선물, 저녁노을의 햇빛이다. 암 수술을 받고 6년이 지난 지금 이 대주교는 경주의 순교자 성지인 진목정의 작은 집과 대구를 오가며 비교적 건강히 지내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