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가로등이 깨는 아침에…

아침 5시 반 정도면 나는 늘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선다. 가로등이 불빛을 거두기 시작한다.

들판 한가운데로 좁다란 성석천이 흐른다. 오리가 물살을 가른다. 재두루미도 그림자 물속에 내리고 덜 깬 잠을 이어간다. 내 발걸음 소리에 놀라 날아오른다. 오리도 덩달아 물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수로 가에는 여뀌가 무리 지어 분홍빛, 백색의 작은 꽃송이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낮은 산 언덕배기 참나무에서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우두둑 선명하다. 덤불 속에서 참새도 짹짹 노래한다.

벼가 누렇게 익어 가을걷이를 기다리는 논의 벼 사이로 듬성듬성 서있는 핏대에 달라붙어 마지막 생명을 고뇌하는 잠자리의 날개가 이슬에 젖어 무겁다. 한 세대의 생이 마감되어간다. 물속에 뿌려놓은 알이 세대를 이어갈 꿈을 꾼다.

이른 논에는 추수가 끝나고 벼의 밑동에 옅은 초록의 새순이 돋아난다. 베어낸 줄기에서 다시 자라는 부추처럼 말이다. 다시 벼가 자라 이모작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변 야산에도 밤톨이 집을 나가고 속이 휑하게 비어 있는 껍데기 밤송이가 쓸쓸하다.

기온이 차갑다. 손끝이 시리다. 겨울이 먼발치에서 다가오는 듯하다. 개울 따라 물안개가 자욱하다. 낙엽 지는 풀 포기의 누르스름한 색감과 어울려 한 폭의 산수화다. 아침이면 늘 젊은 부부가 다정스레 산책을 나온다. 여자는 우리 강아지를 무척 반긴다. 한번 들려준 이름을 늘 기억하고 만나면 불러준다. 즐겁게 만나는 이웃이 됐다.

저 멀리 북한산 등성이를 타고 아침이 붉어진다. 복식호흡으로 세상을 들이마신다. 그리고 나에게 최면을 건다. "오늘은 좋은 일이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