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0.29 09:53

Essay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했던가. 누구에게나 가슴 한켠에 꽃처럼 피어 있는 그리운 이가 있다. 생각만 해도 빙그레 웃음짓게 되는 사람. 볕 좋은 가을날, 눈이 부시게 푸르른 하늘을 보며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한다.

“언니, 큰언니 크리스마스 꽃이 폈어!”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세 살배기 막냇동생의 목소리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밝고 흥분되어 있었다.

“으응? 크리스마스 꽃?”나는 깜짝 놀랐다. 크리스마스 꽃이라고 들은 적이 있는가? 나는 매년 가을마다 추억을 일깨워주는 크리스마스 꽃을 만난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우리 막내가 명명한 꽃이다. 내게는 아주 뜻깊은 꽃.

막내가 이끄는 대로 뛰어가면서 도대체 크리스마스 꽃이란 어떤 걸까 궁금했다. “하하하하… 요 꼬마 아가씨야~~” 내 응답에 눈이 휘둥그레진 막내에게 나는 뽀뽀를 해줬다. “이건 있지, 코. 스. 모. 스. 라고 하는 꽃이란다. 크리스마스가 아니고….” 해맑게 웃으면서, “아, 코.스.모.스. 라고 언니?” 하며 몇 번을 또박또박 기억하려고 연습을 했다. 요즘 여기저기서 막내 얼굴이 코스모스 꽃마다 흔들린다. 낯선 영어 단어를 헷갈리며 외웠나 보다. 막내는 그렇게 엉뚱하게 뭔가로 우리 식구들을 자주 웃게 했다.

바로 위 오빠가 초등학교 1학년 입학할 때 아주 놀라운 일이 생겼다. 자기도 학교에 간다고 우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무도 그 고집을 꺾을 길이 없어 오빠 곁에 작은 의자를 하나 놓고 한동안 교실 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 영향이었을까. 막내는 만 여섯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나이가 어린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모든 행동은 똑똑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생각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들이 있었다. 무어라 꼬집어서 말하기는 힘든, 미묘한 차이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행동으로 내보이는 실천력이나 발표력 같은 건 문제가 없지만, 약간 복잡해지는 사고력에는 나이의 한계가 작용하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가지고 온 시험지 답안도 너무나도 웃겼다. 5월 5일은 <-> 날이다, 라는 괄호 속에 사탕 먹는 날이라고 적혀 있는데 뭔가 지운 자국이 있기에 “여기 먼저 썼던 건 뭐지?” 하니까 “과자 먹는 날이라고 썼는데 틀렸다 해서 고친 거야.” 웃을 수밖에…. 왜 그렇게 썼느냐 물어보니 아무렇지도 않게 저번 5월 5일에 과자랑 사탕을 주어서 맛있게 먹었던 게 생각났다며 천진하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온 식구가 다 웃어버렸다.

그렇게 막내는 명랑 쾌활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상냥했다. 우스갯소리를 즐겨 남들을 편안하게 웃게 하는 데도 선수였다. 분위기 파악이 빨라 자리에 모인 누구에게나 골고루 기쁨을 나눠주는 ‘즐거움 기부 천사’였다. 방글방글 웃는 얼굴이 나타나면 누구나 반가움과 행복감으로 목소리가 들뜨곤 했다. 정말 그 방면으로는 천재성을 지닌 것 같았다. 싫어할 수가 없는 성격을 가졌었다.

그 막내가 이젠 없다. 둘째를 임신해서 아기와 함께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다. 그 꼬마 막내가 있으면 지금 매일이 얼마나 신나고 즐거울까. 생각만 해도 웃음이 입가를 맴돈다. 코스모스가 피면 막내의 매력 포인트인, 웃음 가득 머금은 환한 얼굴이 떠오르고, 숨차게 나를 불러대던 목소리가 들려온다.

“큰언니! 크리스마스 꽃이 폈어!”

막내가 낳은 첫딸이 이제 직업 전선에서 열심히 일하는 아가씨로 컸다. 만날 적마다 막내와 쏙 빼닮은 모습을 보노라면 그때마다 사무치게 그리워지곤 했다. 그런데 스튜어디스 시험 원서를 내고 성형을 해버린 거다. 물론 수술은 성공적으로 되어 예쁜 조각 미인으로 재탄생했다. 하나 막내의 모습이 사라져버렸다. 얄상한 눈매는 쌍꺼풀로, 코는 더 오뚝해져 서양미인 쪽으로 둔갑한 거다. 많이 섭섭했다. 상의 한 번 없이 바꿔버린 얼굴을 보고 어머니는 나보다 실망이 큰 눈치였다. “어머, 예뻐졌구나”는 빈말?

요즘 한적한 곳에 떼 지어 피어 있는 코스모스가 내게는 그날부터 크리스마스 꽃으로 새겨져 하늘거린다. 그 빛나던 눈동자에 살짝 멋쩍음을 머금은 채 “어? 코! 스모스?” 하며 배시시 웃더니…. 의사들이 엄마 목숨만이라도 지키자며 다음에 또 가지면 되잖으냐 했지만, 고집을 피우면서 내 아기를 지켜낸다고 수술받을 날 새벽에 가버리다니…. 고 몇 시간을 못 버티고 35살 고운 나이에.

세상에는 때가 있다는 것과 어쩔 수 없는 죽음을 이겨낼 수 없는 게 인간이라는 것을 그때 또 느껴야만 했다. 너무 큰 슬픔은 눈물도 안 나오게 하고, 모든 생각을 멈추게 한다. 못 해줬던 일만 새록새록 떠오르고 같이하자던 약속들만 실을 꿰는 이별이 죽음이다. 우리 모두에게도 올 일이다. 차츰차츰 그 일을 향해가고 있는 도중에서 우리는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이 만남은 이 세상에서 어쩌면 가장 짜릿하고 찬란한 행복의 순간들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영원히 간직해둬야 하는 아름다운 일일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 꽃이 가득한 꽃 숲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에 가득 내 막내의 웃음꽃이 날아든다. 마구 뛰고 깔깔대며 “크리스마스 꽃이 폈어. 큰언니~~이~~” 내 마음도 따라 달음박질친다. “아니야~아~ 이건 코스모스라고 해~~” 하하 호호 하늘로, 하늘로 가득가득 막내랑 웃어젖히는 소리가 날아가는 것 같은 이 착각을 잃기 싫다. 죽음과 삶으로 나뉘어 있는 이 안타까움은 내가 가는 날 만나리라는 약속을 더 굳힌다. ‘사는 날까지 살다 가면, 만나자…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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