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우주 茫茫大海(망망대해)… 정교한 그물로 길어올린 상상력

"예전의 우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별들 사이 어디쯤에 우리가 있는 건지 궁금해했지. 이젠 발밑을 내려다보며 먼지 구덩이 속에서 자리 잡을 곳을 찾고 있어."

땅은 황량하고 모래바람은 집과 사람을 덮친다. 죽어가는 지구와 멸망의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 옥수수 외에는 자라지 않는 가까운 미래에 우주왕복선 시험조종사였던 쿠퍼(매튜 매커너헤이)도 아이들을 키우며 농부로 살고 있었다. 하지만 쿠퍼와 딸 머피(맥켄지 포이)는 이 모래먼지의 혼돈 속에서 인류를 구원할 '저 바깥 그들'의 메시지를 읽어내고, 폐쇄된 줄 알았던 미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계획 '라자루스'의 존재를 알게 된다. 쿠퍼는 가족을 뒤로하고 아멜리아(앤 해서웨이) 등 과학자들과 함께 토성의 띠 근처에 나타난 '웜홀(Worm Hole·우주의 먼 시공간을 잇는 통로)'을 통해 인류를 구원할 길을 내기 위한 탐사를 떠난다.

올 하반기 최고 기대작 중 하나인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터스텔라'(11월 6일 개봉)가 베일을 벗었다. 꿈과 무의식에 관한 스릴러 '인셉션'과 '다크 나이트' 시리즈로 명장(名匠)의 솜씨를 입증했던 그다. 이번엔 최신 물리학과 영화적 상상력의 정교한 그물로, 우주 망망대해에서 흠결을 찾기 어려운 1억6000만달러짜리 서사시를 길어 올렸다. 영화는 중반 이후 지구와 우주를 번갈아 비추며 긴박하게 몰아붙인다. 폭발하는 우주선과 불타는 옥수수밭이 중첩되고, 서로 다른 애착과 이성(理性)의 탈을 쓴 이기심, 생존 본능과 정의가 부딪치고 깨어진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관객을 압도하는 힘은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놀라운 비주얼에서 나온다. 우주선이 웜홀을 통과할 땐 최근에야 존재가 확인된 '중력 렌즈 효과'가 시각화되고, 시공간이 아름답게 소용돌이치는 블랙홀 속에선 '사상의 지평선(Event Horizon)'이 눈앞에 펼쳐진다. 가까스로 도착한 외계 행성, 생명의 근원인 줄 알았던 물은 거대한 절망의 벽으로 바뀐다. 이 영화의 공동 제작기획자인 캘리포니아공대 명예교수 킵 손은 칼 세이건 원작 '콘택트'를 자문했던 천체물리학자. 웜홀을 통한 성간 여행(Interstellar Travel)의 가능성을 처음 알렸던 그가 이번 영화에 웜홀과 블랙홀, 시간과 중력에 관한 모든 지식을 쏟아부었다.

관람자에게 고난도 지적(知的) 게임을 요구했던 놀런의 전작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야기가 친숙한 것도 강점이다. 놀런은 탐욕으로 무너진 디스토피아를 묘사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낙관을 잃지 않으며, 지구의 소중함을 말하면서도 우주와 개척에 대해 웅변한다. 중력의 비밀을 품은 블랙홀의 특이점보다 더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고, 시공간의 씨줄 날줄을 넘어 전달되는 것도 결국 사람의 마음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가족애라는 보편적 소재에 담아낸다.

배우들도 힘이 있다. 매커너헤이가 23년간 쌓인 가족의 영상 메시지를 한꺼번에 읽으며 감정을 폭발시킬 때, 해서웨이가 웜홀을 통과하며 일그러진 시공간 속 '미지의 그들'을 향해 손을 내밀 때, 관객은 왜 아카데미가 이들을 사랑하는지 깨닫는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정교함, '콘택트'의 과학적 정합성, '미지와의 조우'의 드라마, '그래비티'의 비주얼까지, 영화는 그동안의 SF 걸작들의 장점을 한 편의 교향악으로 조화롭게 직조해냈다. 이 영화는 당분간 우주를 다룰 영화들에 넘기 어려운 벽이 될 것이다. 상영시간 169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