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 MBA] 진정한 혁신은 敵과의 동침으로 태어난다

연구·개발(R&D)을 통해 세상에 없던 혁신적 제품을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렵다. 많은 기업이 매년 매출의 2~7%에 이르는 큰 투자를 연구·개발에 쏟아붓는 것은 역설적으로 혁신의 어려움을 말해준다. 그러나 혁신적 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이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 판매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유통망 개척, 신제품의 인지도 확보, 기존 경쟁사의 견제 등이 혁신 제품의 성공을 가로막는 주요 도전 요인이다.

세계적 생활용품 회사인 P&G는 1982년 칼슘이 강화된 혁신적 오렌지 주스 '시트러스 힐'을 출시했다. 아침 식사로 우유 대신 주스를 마시는 소비자에게 부족하기 쉬운 칼슘을 인체에 흡수되기 좋은 형태로 첨가한 혁신 제품이었다. 게다가 P&G가 가지고 있는 탄탄한 생활용품 유통망과 마케팅의 강점을 활용하면 신제품의 성공은 시간문제로 여겨졌다. 그러나 시트러스 힐은 10년이 넘도록 1·2위 브랜드에 한참 못 미치는 3위로 고전하였고 결국 P&G는 1994년, 경쟁사인 트로피카나에 칼슘 투여 기술 특허를 넘기면서 주스 사업을 정리하였다. 자본과 노하우를 가진 대기업조차도 신제품 판매에 곤란을 겪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혁신 제품의 성공적 시장 진입을 위하여 종종 활용되는 방안은 제휴와 연결 개발(Connect & Development)이다. 연결 개발은 기업의 연구·개발 활동을 외부의 개인, 납품업체, 연구소, 학교 등과 협력하여 진행하거나 아웃소싱하는 것을 일컫는데, 선도 기업에선 혁신의 50% 이상이 연결 개발을 통해 이루어진다. 적극적으로 연결 개발을 활용하는 기업은 어느 정도 성공 가능성이 입증된 아이디어만 선별해서 투자할 수 있는 장점을 누리고 연구·개발의 소요 시간을 줄여 혁신 제품의 출시 주기를 앞당길 수 있다.

한편 혁신의 상품화 단계에서 제휴 활용이 증가하는 것은 글로벌화와 산업 융합화 추세와 관련이 있다. 단일 국가나 지역 시장의 장벽이 무너지고 상품 정보가 실시간으로 국경을 넘어 유통되는 환경에서 혁신 제품의 전 세계 동시 출시가 보편화되고 있고, 글로벌 영업력과 유통망을 갖춘 거대 기업조차도 단독으로 혁신 제품을 출시하는 것이 어려운 여건이 조성되었다. 그 결과 목적에 따라 경쟁사와도 자유롭게 손을 잡는 일이 정보통신이나 제약 등 기술 집약적 산업뿐 아니라 일반 소비재 산업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앞의 실패 사례에서 언급한 P&G는 일회용 기저귀 연구·개발 과정에서 쉽게 찢어지지 않는 비닐을 발명하였고 이 기술을 세제 분야의 주요 경쟁사인 클로락스와 제휴하여 글래드라는 브랜드로 출시하였다. 일회용 주방 비닐 제품을 생산하고 있던 경쟁사의 브랜드와 생산 설비를 활용하여 출시를 앞당기려는 의도와, 시장 선도 경쟁사와 정면충돌을 피하려는 전략적 포석이 깔린 움직임이었다. 세상을 놀라게 한 '적과 동침' 결과 글래드의 매출은 두 배로 껑충 뛰었고, 기술 이전 대가로 글래드의 20% 지분을 확보한 P&G는 출혈 경쟁 없이 기대하는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연결 개발은 요구되는 혁신 범위가 넓어진 오늘날 기업들이 반드시 고민해야 하는 과제이다. P&G의 전임 CEO인 래플리가 연결 개발을 적극 도입한 이후 이 회사는 연구·개발비를 매출의 5% 선에서 2.6%로 낮추면서도 신제품의 성공률을 향상시키는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자체 개발이 아닌 새로운 혁신을 배척하는 순혈주의(NIH·Not Invented Here) 문화로는 더 이상 급변하는 환경에서 혁신 기업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