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환자들 위한 주장 펴야 정부도 업계도 믿고 따라온다

어느 나라나 건강보험 정책만큼 복잡하게 얽힌 게 드물다. 정부, 병원, 환자, 의사단체, 제약사, 의료기기회사 등 저마다 입장과 이익이 다르다 보니, 신경전이 치열하다. 현재 국내에서 원격의료 도입이 파행을 거듭하는 것처럼 말이다.

미국 연방정부에 의료정책을 자문하는 국립의학연구소 하비 파인버그 전(前) 회장은 "정책을 도입할 때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환자에게 득이 되느냐 아니냐"라며 "의사들은 환자들의 불만과 불편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의학연구소를 2002년부터 12년간 이끌며 미 의료계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평가받았다. 의료정책 전문가로, 하버드대 공중보건스쿨 학장도 13년간 지냈다. 그가 대한민국 의학한림원 초청으로 지난 30일 우리나라를 찾았다.

파인버그 박사는 의사와 환자 파트너십의 대표적 사례로 에이즈와 유방암 정책을 꼽았다. "에이즈 환자단체는 여러 약재를 섞어 써야 효과가 크다는 것을 알고, 의료보험에서 그 치료법이 인정받도록 의사단체와 운동을 벌였습니다. 환자가 나서고 의사가 뒤를 받쳐준 거죠. 그 결과 생존율이 크게 올라가고, 관리 가능한 질환이 된 것입니다." 그는 "유방암도 환자와 의사단체들이 나서서 조기 발견의 중요성을 알렸다"고 했다. 이렇게 하면 정부나 국회도 의료정책 도입과 심사에 적극 나서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만성신부전 환자 신장투석의 경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았는데 환자가 늘면서 모든 투석이 보험으로 가능해졌다"며 "날로 의료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무엇에 건보 적용 우선권을 줘야 할지 사회가 논의하고 합의하는 것이 정치 이슈보다 우리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됐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정부, 시민단체, 의사단체가 갈등 관계인 경우가 잦다"고 하자, 그는 "사실에 근거해 환자 중심으로 논의가 모아져야 한다"며 "의사들이 환자들의 대변인 노릇을 한다면 궁극적으로 모두가 믿고 따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