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차와 이야기가 있는 국악콘서트 '다담'

가을을 부르는 비가 촉촉하게 국악원의 뜰에 내리고 있다. 여름이 떠나간 자리에 성큼 들어와 자리한 가을이 맞이하는 비의 촉감이 차갑게 살갗을 스쳐 간다. 거부하지 못하는 계절의 흐름을 느끼면서 나는 그 차가운 감촉을 즐기자고 생각한다. 이미 관람객이 모여들기 시작한 예술의 전당과는 대조적으로 국악원으로 향하는 비 내리는 뜰이 호젓하다.

우산을 쓰고 찾아가는 오전 시간이 모처럼의 여유를 마음에서 찾고 있었음인지 몇 날의 분주함을 밀어내고 있는 편안함이다. 우면당의 실내로 들어서자 그 까닭 없던 즐거움의 확인이 된다. 차와 이야기가 있는 오전의 국악콘서트가 전달하려는 즐거움은 빛깔고운 보이차의 색감으로 분위기를 감지한다.

잘 차려진 손님접대의 상차림처럼 몇 가지 종류의 아름다운 차로 그 빛깔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녹차 가루로 만들어진, 우리 옷감의 자연색처럼 고운 연녹색의 떡으로 미리 느껴보는 감각의 맛보기이다. 쫄깃한 향기로움이 입안에서 맴돌던 떡의 고소한 느낌을 잘 우려낸 연잎 차의 향기로움으로 더해간다.

차와 이야기가 있는 국악콘서트 다담은 정은아 다담지기의 진행으로 우리 연극계의 거장 이윤택 작가와 함께 해금과 현대 악기와의 멋진 조화로 진행되었다. 현대 악기인 건반악기의 멜로디에 우리의 전통악기인 해금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선율은 즉흥곡으로 작곡된 곡으로 동서양의 공통 리듬인 12/8박자를 주축으로 이루어졌다.

Ability(작곡:이진구) - 해금(김정림)의 자연스러운 음색이 건반의 아름다운 멜로디(이진구 연주)를 이끌어가면서 다담연주의 문 열기가 시작된다. 비가 내리고 있다는 느낌의 전달이 해금으로 이어진다.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고 소리가 나의 내면으로 흘러들어와 그 음률로 비와 해금의 흐름이 하나가 된다.

지영화류해금 산조 - 해금(김정림)과 장구(고수, 강형수)로 연주하는 민속 기악 독주곡으로 섬세하고 굴곡이 많으며 경기도 민요처럼 가볍고 경쾌하여 재미있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이 첨가되어 잠시 마음을 쉬어가도 좋은 느낌으로 한 호흡을 멈추게 한다.

돌아오는 길(작곡:조승현) - 해금(김정림)과 베이스 기타(박성환)로 이어지는 한 걸음 두 걸음 느리게 걸어서 돌아오는 길은 아쉬움으로 남겨진다. 생의 모든 시간이 무대 뒤 화면에 뜬 붉은 석양처럼 후회로 남겨지는 아쉬움을 날리고 있다. 꽃상여의 뒤를 따르는 휘장이 연상되는 하얀 휘장들이 음률에 따라 바람에 펄럭인다.

또 다른 길(작곡:이진구) - 해금(김정림), 건반(이진구), 드럼(송지훈), 베이스기타(박성환),첼로(임이랑)의 현대 악기와 전통악기인 해금이 함께 어우러지는 새로운 길의 시작이다. 새로움이 전달하는 두려움과 그 두려움을 지니고 걸어가는 또 다른 길의 설렘과 기대는 새로움이라는 전통과 현대의 접목으로 시도되고 두려움은 이미 시공을 넘어간 세대의 교류로서 새로운 시도로 향하는 무한의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첼로의 흐름에 이어지는 드럼의 아름다운 소리가 울리고 기타와 건반의 음률이 비와 함께 구룡산 자락을 적신다.

검은 고양이 네로(작곡:이진구) - 해금(김정림), 건반(이진구), 드럼(송지훈), 베이스기타(박성환), 첼로(임이랑)의 편곡된 연주에서 해금이 지닌 갖가지 소리에서 고양이 소리를 흉내 내기도 한다.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한 국악으로서의 편곡이다. 즐거움으로 마무리가 되는 연주의 마지막 곡처럼 비 개인 하늘에 햇살이 한줄기 곱게 흐르고 있다.

산조로 풀어내는 우리 국악의 선율에는 기쁨과 설렘이 동행한다. 꽃이 만개하여 보는 이에게 환한 즐거움을 선사하듯이 우리의 전통문화가 지니고 있는 진정한 소리의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장르가 산조음악이다. '허튼 가락'이라는 뜻으로 풀이되는 산조(散調)는 장구 반주에 맞추어 연주하는 기악 독주 음악으로 19세기 말에 가야금 산조로부터 시작되었다. 각 악기가 지니고 있는 음색으로 연주자가 지니고 있는 음악적 기량과 감각이 최대한 발휘되는 산조음악은 연주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오랜 시간의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다.

해금은 2줄로 된 전통의 악기로 4줄의 새로운 악기로 개발하였어도 결국은 가장 완성된 음색의 표현은 현재로써는 2줄의 악기로서만 가능하다고 한다. 해금을 연주하는 김정림 연주자는  추계예대,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국립국악원 민속단원으로 대학에서 국악을 가르치고 있으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연주자로서 그의 해금 소리에는 가을이 깊숙하게 묻어있었다.

넘치는 직관으로 언어를 풀어내는 예술가 이윤택 작가가 말하는 전통이란 무엇인가? 그가 이야기하는 전통의 악기 해금은 현대의 악기들이 지성과 합리성 위에 정확함의 음색을 표현하는 도구라면 해금은 인간 내면의 소리를 가장 정감 있게 표현해내는 순수함의 음색을 지닌 악기라고 말한다.

전통적인 문화의 보존과 되살림은 전통문화 중심의 시대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또한 그러한 시대의 열림을 향하여 고전들에서 보이는 나름의 철학을 이야기한다. 고전들에서 알아가는 생을 바라보는 그의 철학이 말하는 나를 버리기와 나에게서 도망치기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원형질로서 어떠한 문학이든지 사랑이 지니고 있는 의미의 본질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가 지니고 있는 감성의 세계에서 만나는 시적(詩的)인 의미는 시를 짓기 이전의 내면의 상태로서 어떠한 시간의 제약을 떠난 또 다른 세계와의 마주침으로 시작하는 상상력이다. 항상 불편하고 지루한 현실의 세계에 대한 결핍의 도피로서 이루어내는 것이 상상력으로서 그 지루함의 일상을 무너뜨리는 것이 극적(劇的)인 행위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생각하고 표현하는 예술의 세계는 비상하는 새의 날갯짓이다. 보들레르의 시에 나타나는 '앨버트로스'는 신천옹과의 조류로 날개를 펼치면 날개를 편 길이가 3~4m가 되는 새로서, 하늘을 나는 환상적인 모습에 비하여 날개를 접고 내려앉으면 짧은 다리로 뒤뚱거리는 못난 새가 된다. 일생 단 하나의 상대하고만 짝짓기를 하는 순결의 새로서 창공에서는 흰 날개를 펼치며 하늘의 왕자가 된다.

지상에서 날개를 접은 앨버트로스의 모습에서 바라보는 예술이 지니고 있는 내면의 세계이다. 예술의 세계에 아름다운 환상의 날개를 달아주는 것은 예술인 스스로 지니고 있는 상상력의 무한대로서 가능하기도 하지만 그 새에게 비상하는 힘을 전해주는 것은 훌륭한 관객들이 지니고 있는 문화로 향하는 시선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전통을 향하여 현실을 뛰어넘는 아름다움의 날개를 달아주는 문화의 시대를 열어가기까지에는 얼마나 많은 앨버트로스들의 비상이 있어야 그것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으로 바라보는 비 그친 푸른 하늘에는 햇살 한줄기가 내리고 있었다. 마치 앨버트로스의 아름다운 비상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