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犯 기리는 신사 참배… 인류사적 차원의 범죄"

한국학술협의회와 대우재단, 조선일보는 고야스 노부쿠니(子安宣邦·81) 일본 오사카대 명예교수를 초청해 '동아시아와 보편주의의 가능성'을 주제로 '제15회 석학연속강좌'를 갖는다. 고야스 교수는 일본 사상사 연구에 천착해온 학자이자,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반대해온 양심적 지식인으로 꼽힌다. 오는 7일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공개강연에 앞서 고야스 교수는 강상규 한국방송통신대 교수(일본학과)와 4일 대담을 가졌다.

강상규(이하 강)=20세기 일본 제국주의는 한국과 중국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런데도 전쟁 책임 문제는 냉전(冷戰)에 가려져 제대로 처리되지 못했고, 주변국에 대한 진지한 사과나 화해가 이루어지지 못한 채 봉합됐다. 이 때문에 21세기 들어 동아시아에서 역사 인식 문제가 다시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고야스 노부쿠니(이하 고야스)=동아시아에서 민족주의 열기가 고조되고 치열한 긴장과 대결관계에 들어가고 있는 건, 그만큼 국내적 위기가 깊고 사회 분열이 크다는 걸 의미한다. 이를테면 일본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같은 역사수정주의적 정치인의 집권을 용인한 것도 오랫동안 지속된 경제 불황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심각한 사회적 위기와 연관 있다. 또한 야당(사회당)이 사실상 해체되고, 군국주의화나 원자력발전소 재가동에 반대하는 시민운동이 현실적 힘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강=21세기 동아시아는 민족주의의 부상(浮上)으로 긴장 관계에 들어갔지만, 70년 가까이 분단 상태인 한반도로서는 민족주의를 포기하기도 어려운 처지다. 동아시아 각국의 민족주의가 일본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고야스=이른바 '역사 인식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중국의 일본 비판이 점점 민족주의적 색채를 더해가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될 경우, 역설적인 문제가 생긴다. 역사 인식 문제를 촉발시킨 장본인인 아베 총리의 입장이 거꾸로 (한·중에 맞서는) 대항(對抗) 민족주의로 비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저와 같이 일본 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지닌 사람들은 민족주의적 압력에 짓눌리는 불행한 사태를 맞게 된다.

강=그렇다면 한국은 일본의 우경화나 과거사 인식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갖는 것이 필요한가.

고야스=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 한국은 민족주의적 차원에서 다룰 것이 아니라 인류사적 차원의 범죄 행위로 항의해야 한다. 과거 군국주의 일본이 동아시아 이웃 국가들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가해 행위를 했음에도, 현직 일본 총리가 전범(戰犯)들이 합사돼 있는 제사 시설에 참배하는 것은 인류사적 차원의 범죄다. 이런 항의를 통해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를 둘러싸고 동아시아 시민운동의 연대가 형성될 수도 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건 민족주의적 대립이 아니라 동아시아 시민으로서의 공감과 연대다.

강=동아시아에서 시민 차원의 교류나 연대가 가능한 영역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고야스=한국의 징병제나 일본 평화헌법의 원칙과 현실에 대해 한국과 일본 학생들이 공동 토의를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원자력 발전 문제도 본질적으로는 일국적(一國的) 차원을 넘어 지구적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강=20세기 후반부터 동아시아 각국이 눈부신 경제 발전을 실현하면서 이른바 '유교 자본주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최근 중국 정부는 강력한 국가적 지원을 통해 유학(儒學)의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패권적 성격을 강화하는 정치 이데올로기로 작용할 우려도 크다. 과연 유학이 근대 서양문명을 보완하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는가.

고야스=이번 강좌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도 동아시아를 과거의 유교문화권보다는 현재의 생활문화권으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과거 유교는 '중화제국(中華帝國)'이라는 사대적(事大的) 질서를 지탱했던 정치적이고 도덕적인 교리이기도 했다. 동아시아에서 유교문화권을 강조하다 보면, '중화제국'의 재등장을 용인할 위험성이 있다. 이보다는 동아시아를 각국 시민의 생활 세계나 연대의 공간으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야스 노부쿠니(子安宣邦)

근현대 일본 지성사·문화사에 대한 저명한 사상가로 도쿄대 문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윤리학을 전공했다. '일본 내셔널리즘 해부'와 '야스쿠니의 일본, 일본의 야스쿠니' 같은 저서들은 국내에도 소개되어 있다.

☞강상규 교수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과 일본 도쿄대에서 각각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19세기 동아시아의 패러다임 변환과 다중거울' '조선 정치사의 발견' 등이 있다.


▷제15회 석학연속강좌=7일 오후 2시30분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02)6366-0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