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 MBA] 선택도 고통이다… 고객에게 엄선된 것만 추천하라

맞벌이 주부인 A씨의 하루는 늘 분주하다. 아침에 일찍 출근하고 저녁에 늦게 퇴근하다 보니 아이들 뒷바라지는커녕 장 보러 갈 시간 내기도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식사 준비를 할 때면 냉장고가 비어 있기 일쑤다. 하지만 이젠 달라졌다. 경기도 남양주시의 콩나물, 강원도 홍천의 옥수수, 제주의 한라봉, 전남 영암의 단감 등 전국 방방곡곡에서 직접 공수한 제철 채소와 과일이 냉장고에 그득하다. 비결은 '농산물 구독'이다. 이제 주문만 하면 안방에 앉아 전국의 채소와 과일들을 하나의 포장 상자로 배달받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 생활이 매우 편리해졌다. 단지 장 보러 가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만이 아니다. 뭘 사야 하나 고민할 필요 없이 업체에서 알아서 제철 음식 재료들을 선별해서 보내주니 그 편리함이 더욱 크다. 매월 정기 구독하는 잡지에 들어갈 콘텐츠를 내가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농산물도 이제 나 아닌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 뭘 먹어야 할지 고민하여 골라 보내주는 셈이다.

농산물뿐만 아니다. 화장품도 '정기 구독'하는 세상이다. 여성 화장품 종류가 좀 많은가? 거기다 내 피부에 맞는지, 가격대는 적당한지 따져야 할 게 한둘이 아니다. 고객의 불편이 있는 곳에 비즈니스 기회가 있다고 했다. 그런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화장품 쇼핑몰이 나왔다. 그런데 다른 쇼핑몰들과는 좀 다르다. 내가 선택해서 구매하는 쇼핑몰이 아니라 회원으로 가입해서 매월 회비를 내는 쇼핑몰이다. 월 1만~2만원의 회비를 내면 한 달에 한 번 전문가들이 선별한 화장품들을 종류별로, 브랜드별로 박스에 담아 보내준다. 그러니 단순히 화장품 구매를 대행해주는 게 아니다. '전문가'들이 '엄선'한 화장품을 보내준다는 데 방점이 찍힌다. 이른바 '큐레이션 커머스(Curation Commerce)'다.

'큐레이션'은 원래 미술계에서 사용되던 개념이다. 큐레이터는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사람으로, 수많은 작품 중에서 기획 주제에 맞는 작품들을 골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이 주 업무다. 여기서 눈여겨볼 개념이 '고르다'란 행위다. 상상할 수도 없는 무지막지한 양의 정보가 범람하는 요즘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게 내게 필요한 정보인지 선별해 내는 게 고역이 되어버렸다. 누가 나 대신에 내게 적합한 정보들을 잘 골라서 가져다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마련이다. 수많은 작품 속에서 나름의 기준으로 거기에 부합하는 작품들을 선별하는 큐레이션 개념이 미술계를 뛰어넘어 이제 각 분야에 널리 쓰이게 된 배경이다. 결국 마케팅의 무게중심도 '무엇을 만드느냐'에서 '어떻게 보여주느냐'로 그 무게중심이 옮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 '콘텐츠(contents)'가 아니라 그 콘텐츠를 보여주는 '맥락(context)'이 더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폭증하는 정보 시대에 단순히 모든 걸 펼쳐놓고 고객에게 직접 선택하라는 건 더 이상 고객을 위한 배려가 아니다. 큐레이션 서비스를 통해 고객의 선택을 단순화시켜 주는 게 진정한 배려다. 델컴퓨터는 고객 선택의 폭을 넓혀주겠다는 생각으로 인스피론, 옵티플렉스 등 41개 모델의 컴퓨터를 내놓았다. 반면 애플 컴퓨터의 모델은 6개다. 게다가 이름도 맥북에어, 맥북프로, 맥북프로레티나, 단 3개. 결과는 다들 아는 대로다. 24가지의 잼을 가져다 놓은 식료품 부스와 6가지의 잼을 가져다 놓은 부스. 선택지가 많은 부스를 찾은 고객이 다소 많았지만 실제 구매율은 선택지가 적은 부스가 10배가 높았다는 어느 실험 결과는 큐레이션의 힘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

엄청난 양의 정보를 간결하게 정리하고 그중 가장 적절한 것을 선별하여 고객에게 제시할 수 있는 큐레이션 능력은 더 이상 미술관만의 경쟁력이 아니다.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다면, 기업들도 큐레이션 개념에 주목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