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脈을 잇다] 막사발 모양은 똑같다? 개성 살려 빚는 게 전통입니다

다기(茶器)로 흔히 쓰는 '막사발'은 우리의 전통 도기다. 일본 국보(1951년 지정)인 찻잔 기자에몬이도(喜左衛門井戶)도 경남 진주에서 제삿밥을 올릴 때 쓰던 멧사발이라는 설이 있다.

막사발 제조의 명맥은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잃을 뻔했다. 막사발이 청자·백자처럼 관요(官窯)의 체계적 관리를 받은 게 아니라 개별 지방 민요(民窯)에서 도제(徒弟) 방식으로 만들어진 데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에 도공(陶工)과 막사발이 일본에 납치당하고 빼돌려졌기 때문이다.

천한봉(81)·경희(43) 부녀는 실전(失傳)될 뻔한 옛 막사발 제조 기술을 되찾아 민족의 맥(脈)을 잇는 도공 이대(二代)다. 천한봉씨는 1970년대 후반 전통 막사발 재현에 성공한 대한민국 도예명장(제1995-24호)이다.

"열세 살에 도자기를 만들어 제법 소질이 있다는 소리도 들었지만, 불혹(不惑) 전까지 요강·화분·항아리나 빚었던 천씨 집성촌의 그저 그런 도공이었죠." 그는 마흔 되던 해 기연(奇緣)이 인생을 바꿔 놓았다고 했다. "조선 도자기 명산지를 돌아보던 일본 승려가 문경 여행 중 우연히 제 도요에 들렀어요. 옛 조선 도공의 명작이라며 내놓은 일본 국보 사진을 보니 그게 딱 6·25 이후 자취를 감춘 막사발이더군요." 그는 이를 계기로 일본에 건너가 이도다완 도요지(陶窯址)를 샅샅이 견학했다. "일본에 징용 간 아버지가 도쿄에서 저를 낳았고, 그 통에 소학교까지 일본서 나왔어요. 일본어에 능해 쉽게 막사발 관련 정보를 모을 수 있었죠." 귀국 후 연구를 거듭한 끝에 두두옥(斗斗屋) 찻사발을 시작으로 35종 이상 전통 막사발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경희씨는 천씨의 5녀 중 막내이자 막사발 기술을 전수받는 아버지의 제자 40여명 중 유일한 혈육이다. "한의사나 교사를 꿈꿨는데 고2 때부터 갑자기 도예에 끌렸어요. 유전자가 그때부터 눈을 떴나 보죠." 결국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했고, 졸업 후 아버지 밑에서 막사발 제조 비법을 배웠다. "학교에서 동서양의 다양한 도자기를 만들어 봤지만, 결국 막사발이 제 적성이더라고요." 부친의 기술을 몸에 익혀 2005년 무렵 본인 고유의 개성이 담긴 막사발을 빚기 시작했다고 한다. "제조 공정은 아버지와 거의 동일하지만 흙의 배합이나 디자인에 약간 변형을 주었죠." 경희씨의 다기는 부친 작품에 비해 대체로 각이 서 있다. "과거 꿀이나 약재 등 귀한 것을 담는 그릇은 모서리를 많이 넣었어요.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죠. 이런 실용성을 높이고자 각을 더 세우고 있어요."

부녀는 각자의 개성을 살리는 것이 전통 막사발의 계보를 잇는 도리라고 설명한다. "과거 도공들도 각자 민요에서 자신의 개성대로 제각각의 그릇을 빚었어요. 한 형태로 천편일률적인 막사발을 만들면 오히려 다양성이 가득하던 전통을 퇴보시키는 꼴이 되죠."

경희씨는 세 차례 부녀전(父女展)을 포함, 50여차례의 단체전과 한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모두 막사발 전시회다. "막사발은 우리 땅에서 청자·백자에 비해 크게 주목받는 도자기는 아니죠. 하지만 이 특유의 수수함은 엄연히 우리 민족이 오랜 세월 간직해 온 멋 중 하나예요. 우리가 외래 문물과 현대 문명의 화려함에 경도돼 이를 잊은 것은 아닌지, 막사발을 보며 한 번쯤 돌이켜 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는 막사발에 담긴 한민족의 소박한 멋이 다시 주목받을 때가 오기를 바란다 했다. "우리 국보·보물 중 청자·백자는 더러 있지만, 막사발은 하나도 없죠. 그렇더라도 국보나 보물 못지않게 막사발도 사랑받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우리 전통의 질박미(質朴美)에 관심을 기울이면, 막사발의 맥을 잇는 우리 도공들도 한층 더 자부심을 갖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