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가격표 안 뗀 제품도 있어요. 그런 게 사이즈까지 딱 맞으면 땡 잡은 기분이지! 싸다고 무턱대고 사지는 말고. 이게 다 짐이요, 결국 재활용바구니행(行)이거든.” 벼룩시장 ‘초보자’로 보이는 학생 옆에서 훈수를 두고 있는 아주머니는 아예 ‘돋보기’를 가져와 여기저기를 살핀다. ‘고수(高手)’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온다.
동묘시장은 평일 250~300개, 주말 550~600개 정도의 좌판이 모여 있다고 통상 말하지만 체감은 그의 몇 배는 되는 듯싶다. 골목 있는 곳, 앉을 수 있는 곳은 죄다 노점이 펼쳐져 있었다. 평일에 이미 ‘사전 답사’를 했는데도 가보면 또 새로운 점포가 있고, 시간 지나면 또 새로운 물건이 보인다.
◇‘구제’와 ‘짝퉁’ 사이
동묘 시장은 ‘싼 가격’으로도 인기지만 특히 유명 브랜드 구제 시장으로도 이름났다. 손때가 많이 묻긴 했지만 루이비통·프라다 같은 명품 브랜드 제품도 가끔 눈에 띈다. 이런 제품은 좌판 대신 옷걸이에 걸리거나 탁자 위에 놓여 있다. 중고 물품 거래를 전문적으로 하는 이들도 있지만 ‘아파트 순회’를 하다 ‘득템’을 하는 상인도 있단다. “동네 차별하려는 건 아닌데, 강남권 아파트를 돌다 보면 물건이 좋아. 고가 브랜드도 많고 입지도 않고 버린 옷이 숱하게 많아. 나야 뭐 반갑지만 씁쓸할 때도 있지….” 10년 넘게 아파트 재활용 옷 수거함 거래를 했다는 한 상인이 ‘영업 비밀’이라며 살짝 귀띔한다.
동묘 시장에 구제 물건이 대거 풀리고, 젊은 층도 많이 찾는다는 소문에 ‘상인’들도 찾는다. 인터넷 쇼핑몰 운영자들이 대부분이다. 지방 상인도 간혹 있다. “여기서 1000원, 2000원에 재빨리 물건을 골라간 다음에 깨끗이 손질해 쇼핑몰에 1만~2만원 정도에 파는 거지. 수완 좋은 젊은 친구도 많더라고.” 일요일만 동묘 시장을 찾는다는 한 상인은 새벽 4시에 물건을 풀자마자 쇼핑몰 운영자들이 물건을 ‘싹쓸이’ 해가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도매상인’이 된 기분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간혹 ‘짝퉁’도 눈에 띈다. “이거 짝퉁이죠”라고 물으니 “아마 그럴걸요. 99%”라는 솔직한 답이 돌아온다. 동묘벼룩시장조합에 포함된 상인들은 자체적으로 ‘짝퉁 판매 금지’를 내세워 자율 규제 하고 있다 하니 외부에서 유입된 상인들인 듯싶다.
◇1920년대 재봉틀에서 희귀 레코드판까지…‘골동품’ 천국
동묘앞역 3번 출구에서 동묘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지지직 하는 소리가 곁들여진 옛 레코드판 소리가 귀를 잡는다. 희귀 레코드판은 물론 각종 CD와 과연 노랫가락이 나오기는 할까 할 정도로 낡은 카세트테이프도 있다. 카세트테이프 하나에 보통 500원. 대로변을 따라 내려가면 2000원짜리 아이들 식판에서 1만5000원짜리 고급 양수 냄비 등을 파는 잡화점도 보인다. 옛날 ‘혼수품 1호’였다는 재봉틀도 있다. 1920~30년대에 등장한 미국 싱어(SINGER)사의 재봉틀이 시선을 끈다. 인테리어용으로 구매하려는 이들도 있다.
‘수집가’를 겨냥한 상품도 곳곳에 눈에 띈다. 지포 라이터나 옛날 동전, PSP 게임기 등이 대표적이다. 옛날 수동식 사진기에서부터 최신 사진기까지 ‘사진 마니아’를 들썩이게 하는 가게도 열 곳 넘게 장사 중이었다. 수동 미놀타 카메라에서부터 다양한 모델의 필름 카메라도 늘어져 있었다. 2만~3만원짜리가 대부분. 280만원짜리 라이카 카메라가 등장하자 사람들이 ‘오~’ 하며 한마디씩 한다.
집에 필요한 물건은 다 있어 보였다. TV, 옛날 휴대폰, 이어폰에서부터 각종 공구를 파는 곳도 있다. 멍키스패너, 육각 렌치, 끌, 못까지 다양하다. 인테리어 용품도 많았는데, 수백만원은 될 법한 대형 자개장도 보였다. 얼마인지 물어보니 ‘판매 완료’란다. 구리·주석 등으로 된 각종 동상이 멋스럽다. 가정집에서 나온 물건이라 했다. 이런 경우는 대신 팔아주고 수수료를 받는다고 한다.
발품 좀 팔았더니 슬슬 배가 고프다. 골목 중간 중간 막걸리 2000원, 파전 1500~2000원에 파는 가게가 반갑다. 옷도 커피 한 잔 값이 안 되는데, 막걸리에 파전으로 배를 채워도 커피 한 잔 가격이 될까 말까다. 왜들 ‘만원의 행복’을 외치는지 이제야 알 듯하다.
2000원보다 조금 ‘비싼’ 옷은 옷걸이에 걸린다. 스키용품, 액자에 한복도 ‘매물’로 나왔다. /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벼룩시장 쇼핑 Tip
①살 물건이 많으면 캐리어나 배낭을 들고 갈 것
카페 인테리어를 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는 한 여성은 아예 여행용 캐리어를 들고 나왔다. 물건 담아주는 검은 봉지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며 ‘동묘 시장의 패리스 힐턴’ 같은 모양새를 풍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란다.
②‘발품’ 생각하면 운동화나 굽 낮은 신발은 필수
③손거울과 얇은 상의
거울 찾기가 의외로 어렵다. 노점이 대부분이기 때문. 친구·가족과 함께라면 휴대폰 사진이라도 찍어 옷 입은 모습을 볼 테지만 혼자인 경우 작은 손거울로 모습을 비춰 보면 좋다. 탈의실도 없기 때문에 옷 입어볼 때를 대비해 상의는 되도록 얇게 입고 가자.
④마스크와 물수건 상비
가끔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이 눈에 띈다. 옷더미를 뒤지다 보면 먼지가 많이 나기 때문이란다. 손이 더러워질 수 있으니 물수건도 함께 가져가면 좋다.
⑤사이즈·얼룩 체크는 필수
얼룩 같은 건 쉽게 빠지겠지 생각하다간 세탁비나 드라이 비용이 옷값의 몇 곱절 할 수 있다. 카드 대부분 불가. 현금 필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