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의 주도 세대가 달라졌다”, 2014년 10대 트렌드 상품

트렌드를 이끄는 사람을 뜻하는 ‘트렌드 리더’라는 말은 왠지 젊은 남성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 선입견이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그동안은 20~30대 젊은이들이 대한민국의 소비 흐름을 이끌어왔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러한 대한민국의 소비 트렌드가 점차 달라지고 있다. 지난 한 해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던 상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세대와 성별을 넘나드는, 그야말로 ‘남녀노소’를 아우르는 소비 양상을 보여준다.

김난도 교수가 이끄는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트렌드 코리아 2015>를 통해 발표한 ‘2014년 대한민국 10대 트렌드 상품’은 다음과 같다. ▲ ‘꽃보다’ 시리즈 ▲ 명량 ▲ 빙수 전문점 ▲ 스냅백(힙합 스타일 모자) ▲ 에어쿠션 화장품 ▲ 의리 ▲ 컬래버레이션 가요 ▲ 타요버스 ▲ 탄산수 ▲ 해외직구 (이상 10가지).

예능 안으로 들어온 시니어와 중년 여성들

최종 선정된 2014년의 10대 트렌드 상품 리스트를 살펴보면 몇 가지 주요한 흐름이 발견된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점은 시니어 세대와 중년 여성들이 트렌드의 중심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특히 ‘할배’들과 ‘누님’들이 배낭여행을 다니는 모습을 담은 tvN의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와 ‘꽃보다 누나’는 2014년 예능계의 가장 핫한 키워드였다. 이 시리즈는 그동안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던 할아버지들과 중년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하면서도, 케이블과 종편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고수하는 놀라운 기록을 만들어냈다. 심지어 ‘꽃보다 할배’ 시리즈와 ‘꽃보다 누나’는 케이블 TV 프로그램임에도 각각 최고 시청률 9.5%와 12.2%를 기록했는데, 이는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들의 시청률과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성적이다.

‘꽃보다’ 시리즈의 인기는 브라운관 내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들 시리즈의 배경으로 등장한 국가들은 모두 방송 직후 인기 관광지로 떠올랐다. 꽃할배가 찾은 대만의 경우, 방송 후 한국인 관광객 수가 전년 대비 약 68%가 증가했으며, 꽃누나가 찾은 크로아티아 관광객 수는 전년 대비 88% 급증했다.

이 같은 인기의 배경은 세대 전략 차별화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예능 프로그램이 주로 10~20대의 젊은 시청자를 타깃으로 삼는 것에 반해, ‘꽃보다’ 시리즈는 ‘시니어’나 ‘기혼 중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선정했는데 바로 이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이다. 관광에 나선 지 10분도 안 되어 무릎이 아파 주저앉는 꽃할배, 가슴에 담아두었던 고민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리는 꽃누나의 모습에서 폭넒은 세대로 구성된 시청자는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 것이다.

문화·예술에의 욕구 충만한 신개념 장년층의 출현

브라운관의 중심으로 부상했던 시니어 세대의 발길은 영화관으로도 이어졌다. 2014년 국내 영화계의 최고 화제작이었던 <명량>은 지난 10월 누적 관객 수 1,700만 명이라는 신기록을 달성하며 한국 영화사에 새 기록을 남겼다. <명량>의 이 같은 성공의 원인 중 하나로는 관객의 연령대가 두터웠다는 점이 거론된다.

<명량>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관람객을 살펴보면, 기존의 주 관람객인 20~30대는 물론이고, 영화 소비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던 40~50대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센터가 실시한 2014년 트렌드 상품 선정을 위한 설문조사에서도 <명량>은 10대에서부터 60대 이상에 이르기까지 전체 세대에 걸쳐 고른 선택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50대 응답자와 남성 응답자의 반응이 뜨거웠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40~50대 관객 대부분이 초·중·고교생 자녀를 둔 부모라는 점을 들어 교육 차원에서 영화관을 찾았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40~50대 집단의 성격 자체가 변했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즉, 영화 관람과는 거리가 멀고 젊은이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 중년이 아니라, 문화·예술을 즐기고자 하는 욕구로 충만한 ‘신개념 장년층’이 출현한 것이다.

관심 밖에 있던 세대를 재구성하다

‘꽃보다’ 시리즈와 <명량>의 성공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바로 ‘세대 공감형’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 그동안 기업에서 주요 타깃으로 선정하지 않았던 소외된 세대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을 재해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고령화 사회가 가속되어감에 따라, 앞으로 한국 소비시장의 블루오션은 시니어 세대를 공략하는 분야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이제 ‘시니어 세대’를 다시 정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즉, ‘저축을 선호하는 알뜰한 집단’이 아니라 ‘소비에 대한 의욕이 충만하며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집단’으로 시니어 세대를 재정의해야 한다. 가족과 자녀를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장년층이 아닌, ‘본인의 삶을 위해 투자할 줄 아는 세대’로 재해석해야 한다. ‘꽃보다’ 시리즈와 <명량>을 비롯한 10대 트렌드 상품을 다시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