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쯤이세요! 얼른 오세요!” 수화기를 통해 들리는 목소리는 카랑카랑하면서도 정겨웠다. 알려준 주소로 찾아간 집 마당에는 알록달록 꽃들만 그득할 뿐, 농사짓는 집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이 집이 아닌가보다 하고 돌아서려 할 때, 다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거기는 그냥 내 살림하는 공간이에요. 가공장으로 오세요.” 양묘장으로 향하려다 다시 마당을 한참 살펴보니, 알뜰살뜰 무엇이든 애정을 듬뿍 담을 것 같은 집주인의 성격이 고스란히 스민 것 같았다. 왜인지 기분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녀를 만나기 100미터 전부터….
꽃꽂이강사에서 생강전도사로
돌아서 찾아간 곳은 전용순씨의 가공장이었다. 가공장은 소문대로 벤치마킹을 하러 오는 이들로 소란스럽다는 것을 증명하듯, 사람냄새로 북적였다. 가는 곳 어디든 사람을 이끌고 다닌다는 주인공 전용순씨는 원대암마을에 굴러온 복덩이로 소문이 자자했다.
“저는 원래 꽂꽂이 강사를 20년이나 했어요. 익산 시내에서 목욕탕도 운영했지요. 성격상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해요. 뭐든 움직여 활동하는 게 제 삶을 일으키는 원동력이지요. 그러다가 시골에 혼자 계시던 시어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셨어요. 누군가는 어머니 곁에 있어야만 했지요. 아이들 교육문제 때문에 우선 남편 혼자 시골로 가게 되었어요. 저는 평일에는 익산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다 주말에는 남편과 시어머니가 있는 시골을 오갔지요. 그런데 남편 혼자서 어머니를 모시니 참 안됐더라고요. 찰나에 제 몸도 아프기 시작했어요. 전부터 몸이 아파왔는데 알고보니 대상포진이었지요. 제 몸은 돌볼 새도 없이 뛰어다니기만 했던 거에요. 그러니 몸이 신호를 보낸 거죠. 그 때, 도시에서의 모든 생활을 접고, 남편을 따라 시골로 들어가자고 결심했지요.”
대상포진은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몸이 아파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괜시리 우울감도 커갔다. 남편은 우울해 하는 용순씨가 더 생기 있게 살 수 있도록 시골집을 리모델링 하기로 결심했다. 집의 재질은 대상포진을 앓는 아내를 위해, 모두 흙으로만 지었다. 남편이 손수 지은 집에서 그녀는 새로운 마음으로 새 삶을 시작하기로 했다.
마을에선 도시에서 들어온 그녀를 달갑게 맞아주었다. 남편의 고향인 원대암마을은 씨족마을이라 이웃모두가 친인척 관계였다. 친척이자, 이웃이 된 마을주민들은 그녀가 무엇을 하든 관심이 많았다. 맨 처음 그녀가 생강농사를 짓겠다고 했을 때 주민들은 모두 의아해했다. 생강농사는 잘해야 10년에 1번이나 수확이 좋다는데, 도시에서 온 조카며느리가 그 길을 가겠다니 손사레치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아픈 어머니와 자신에게 필요한 건 면역력에 좋다는 생강이었다. 전용순씨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가족을 위해 생강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농사의 ‘농’자도 모르던 그녀였으니, 생강농사가 쉬울 리가 없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친척이자 주민들에게 무조건 찾아가 묻고 또 물었다.
농사에 관한 교육이 있는 곳이면 그 곳이 어디든 찾아 나섰다. 교육을 통해 그녀가 깨달은 것은 농사는 그저 사람의 의지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라는 것. 땅과 온도, 습도, 발충제 등 자연과 물질의 힘이 동시에 필요하다라는 것을 알고 나니 그제야 제대로 농사를 지을 용기가 생겼다. 익산시 농업기술센터에서는 오픈마켓 교육을 통해 온라인을 이용한 홍보, 유통, 판매방법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차근차근 밟고 나가니 하나씩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는 꽃꽂이 강사에서, 진정한 생강농부 ‘고사리아주맘’으로 다시 태어났다. ‘고사리아주맘’이란 브랜드는 마을의 특산물인 고사리에서 착안해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웅포에서 자란 자연의 선물, 고사리아주맘 황토생강
생강은 4월에 심어 10월말에 수확한다. 전용순씨가 농사짓는 생강은 금강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과 질좋은 황토에서 재배되어 맛과 향이 풍부하다. 특히 생강은 감기기운이 있거나 졸리고 멀미가 날 때, 소화가 되지 않을 때 먹으면 그 효과가 아주 좋다. 그러기에 자주 섭취할수록 더욱 건강한 몸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생(生)으로 먹는 황토생강은 고역스러운게 사실. 그래서 전용순씨는 고민을 시작했다. 몸에 좋은 생강을 간식처럼 섭취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리고 2013년 10월, 향토산업마을사업에 선정돼 가공공장을 완공하고 편강과 비트편강, 생강가루, 생강즙, 생강액상차 등의 가공품을 개발해냈다. 생각보다 반응은 뜨거웠다.
특히 비트가루를 효소로 만들어 편강에 첨가한 비트편강은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를 만큼 좋다. 하루에도 수십건씩 팔리는 비트편강 덕에 그녀는 비트도 따로 직접 재배한다. 200평 남짓의 땅에 심은 비트는 그녀의 질긴 생명력을 닮은 듯 했다.
전용순씨는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상설시장과 장터에 나가 그녀의 물건을 홍보하고 판매한다. 어디든 움직일 수 있는 곳은 직접 움직여 자신이 농사를 어떻게 짓는지, 어떻게 가공품을 만드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소비자를 이끄는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용순씨는 지역 귀농귀촌인들과의 교류에도 열심이다. 현재, 익산시귀농귀촌협의회의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그녀는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이들에게 멘토를 자처하고 있다.
“제가 겪어봐서 누구보다 잘 알지요. 멘토가 필요하다는 것을. 귀농귀촌을 준비하면서 전문지식이 없기 때문에 멘토가 절실히 필요했지요. 그래서 제가 겪은 실수를 많은 후배들이 겪지 않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싶었습니다.”
원대암마을에는 멘토인 그녀를 따라 귀농한 사람도 3가구나 된다. 그들에게 전용순씨는 빈집정보부터 작물선정, 재배방법까지 뭐든 친절히 알려주는 귀농길잡이다. 그러한 후배들을 보며 전용순씨는 더 도와줄 게 없을까 고민한다. 그것이 바로 멘토가 할 역할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공장 옆에는 육묘장이 있다. 전용순씨가 사는 웅포면에서 개인이 육묘장으로 법인허가를 받은 것은 첫 사례이다. 그녀는 마을소농들의 육묘를 거둬 직접 키워준다. 20년 동안의 꽃꽂이강사 노하우를 살려 어떻게 키울지, 어떻게 살려낼지를 그녀 자신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니 마을에선 용순씨를 복덩이라 부르지 않을수가 없으리라.
현대농업의 지름길, 6차산업으로 함께 가요
귀농 전 농사를 전혀 몰랐던 전용순씨. 지금은 생산부터 가공, 유통, 판매까지 혼자서 다 하는 만능일꾼이 다 됐다.
생강농사를 하면서 전용순씨는 홍보활동이 판매력에 미치는 여파가 크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소비자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SNS를 활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평생 살림과 사업만 알던 용순씨에게 SNS를 활용한 물건홍보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때마침 함열농업기술센터에서 컴퓨터기초와 블로그활용, 전자상거래에 대한 교육이 있어 용순씨는 차근차근 그 과정을 밟아나갔다.
블로그를 활용한 홍보활동은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소비자들에게 전파되는 속도와 과정이 빠르다는 것을 몸소 느껴지니 재미가 더해갔다. 직접 소비자와 부딪치니 저절로 눈이 뜨인 셈이다. 현대농업에 필요한 활동이라 생각하니, 혼자서만 알고 좋아할 수가 없었다. 이웃 주민들에게 스마트폰활용법, 블로그활용법을 전수하며 함께 나누는 기쁨도 누리게 됐다. '
전용순씨는 가공품도 지속적으로 연구개발 중이다. 무조건 생산에만 초점을 두는 게 아닌, 가공품의 얼굴이라고도 볼 수 있는 제품용기개발과 시설투자에도 아끼지 않는다. 그녀는 좋은 제품을 구상하면 제일 먼저 멘토와 상의하고 귀농인들과의 모임에서 시식 후 결정한다. 그만큼 대중의 입맛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입맛에만 맞으면 아무 소용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먹어주어야 그게 진짜 제 입맛이지요.생산과 매출을 맞춰야 하려면 시설에도 투자를 해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맞춰주어야 합니다. 블로그를 보고 찾아오시거나 상품을 문의하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그에 따라 움직여줘야 우리 농업도 발전할 수 있습니다. ”
주문량만큼 작업량도 늘어나면서 그녀는 마을주민들과 합심하기로 했다. 혼자서만 동동거리는 것은 걱정해도 안 될 일이라는 것을 일찍이 깨닫고, 친척이자 이웃인 마을주민들과 고사리끊기와 가공작업 등의 일감을 나눈다. 농사짓기가 어려웠던 나이든 어르신들은 소일거리가 생겨, 몸도 움직일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일터인 셈.
사실, 객지에서 온 그녀가 마을의 소득을 이끌어가니 주민들에게 밉상이 될 법도 하건만 주민들은 이제 전용순씨를 전폭적으로 믿고 지지하며 판로를 부탁하기도 한다. 그러면 그녀는 자신의 일은 열일 제치고 마을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홍보하고 팔아주기까지 하니 세상 어느 누구보다 이쁜 조카며느리가 아닐 수 없다.
전용순씨는 다른 지역의 귀농인들과도 SNS를 통해 열심히 교류중이다. 같은 작물이더라도 각 지역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끊임없는 정보공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유럽으로 6차산업 연수를 다녀온 뒤로는 그녀의 목표도 분명해졌다. 농업을 중요시 하는 유럽의 경우 소포장, 고단가가 적정한 기준이 되어 농업의 가치를 적절히 지키고 있다. 이처럼 그녀 역시 스스로 노력한 만큼의 댓가를 기준으로 정하는 대신 모든 중심은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정했다. 그녀가 전하는 생강의 달큰한 맛이 널리널리 퍼지길 바라면서….
앞으로 그녀는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도 개발할 예정이다. ‘엄마가 만들어준 그 맛 그대로’를 주제로 편강을 만들어보고 시식해볼 수 있는 체험 등 다채로운 만남이 기다릴 듯 하다. 오늘도 후배들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그녀의 모습이 참 예쁘다. 누구보다 열정적인 귀농4년차 전용순씨. 그녀의 열정이 후배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길 바라본다.
“귀농을 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계획을 세운 뒤 이 계획이 타당한가에 대한 의견을 주위에 물어보고, 내 형편에 맞는지를 판가름 해야 합니다. 작물을 선택하는데도 많이 알아보아야 합니다. 작물도 키우는 방법이 다 다르기 때문에 내게 맞는 작물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농촌에 오려면 기동성이 있어야 합니다. 저같은 경우는 각종 농기계교육도 다 받았습니다. 그만큼 농촌에서는 할 일이 많습니다. 농촌에서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 대한 내조자가 아닌 동업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같이 농사를 짓고, 같이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자료제공·전라북도 귀농귀촌 지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