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으로 특별하다고 하려니 모양 빠져 보이기도 하지만, 면허증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 면허증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연이어 내 얼굴로 시선을 돌려 고개를 끄덕이거나 갸웃거리니 특별한 면허증임이 틀림없다.
어떤 사람은 내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면허증을 신기한 듯 쳐다보지만 절대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남편과 아이들이다. 남편은 이런 면허증을 가진 나를 이상한 사람 쳐다보듯 했고, 비슷한 얘기라도 꺼내려 하면 ‘장모님이 아시면…’이라는 말만 중얼거릴 뿐 도통 들으려 하지 않는다. 장기 기증을 결정한 내 고집을 꺾기는 어렵다는 걸 알고 친정에 연락해서 말리겠다는 협박성 중얼거림이다. 그렇지만 나는 남편 몰래 장기 기증은 물론 3년 전에는 인체 조직 기증까지 다 마쳐놓은 상태다. 이런 나의 생각이나 결정을 가족들에게 이해시키고, 특히 남편이 내 뜻을 지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어쩌면 장기 기증을 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안타깝게도 시부모님은 70세를 넘기자마자 한 해에 두 분 다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르고 애도 기간을 거치는 동안 남편의 감정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친정 부모님 두 분 다 건강하시고, 시부모님과는 멀리 떨어져 지낸 입장이고 보니 천붕지통의 아픔을 겪는 남편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막내여서 그랬을까, 남편의 슬픔과 상심은 유독 심했다. 밤잠을 못 자고 베란다에 나가 담배를 피워 무는 날이 늘어났고, 한밤중에 부모님 물건을 어루만지며 흐느끼는 소리에 식구들이 여러 번 잠에서 깨기도 했다. 천안 근처 산소를 다녀온 날이면 마치 묵언수행을 하는 수도승처럼 굳어버린 얼굴에, 말소리도 웃음소리도 부모님 곁에 두고 온 사람처럼 우울해 했다.
시부모님의 급작스럽고 허망한 마지막 모습과 남편의 슬픔을 지켜보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으냐에 대한 답을 찾는 시간이었다. 사는 동안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다가 마지막 순간을 맞는다면 후회할 일도 없으며, 생명이 다하는 그때 나의 몸 일부라도 나누어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장기 기증이야말로 바로 ‘나의 일’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게다가 늘 이타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지 않았던가!
2008년, 한국복싱의 중흥을 위해 링에 올랐다가 쓰러져 뇌사 판정을 받은 최요삼 선수. 자신의 유언에 의해 이루어진 기증은 아니지만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싶다’는 말을 자주 일기장에 기록했다는 사실을 알고, 가족들의 결정으로 이루어졌다. 폐, 간, 심장, 각막 등의 장기를 6명에게 나눠서 기적을 만들어준 셈이다. 100살 생일을 맞이한 해에 스스로 곡기를 끊고, 한 달이 되던 날 삶을 마감한 스콧 니어링, 평소 즐겨 앉았던 평상에서 무명옷을 입은 채 다비한 후, 남은 재는 평소 가꾸던 꽃밭에다 뿌리라던 법정, 이들의 마지막 모습도 더없이 아름다웠지만 나에게 충격을 준 사람은 따로 있다. 멋지고 젊은 의사, 박준철이다.
죽기 전에는 베트남, 필리핀 등 오지를 찾아 봉사활동을 했으며, 2011년 4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는 장기 기증은 물론 우리나라 최초로 ‘인체 조직’을 기증했는데, 그의 기증으로 약 100명의 환자가 희망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인체 조직 기증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늘 ‘더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젊은 의사의 마지막 모습을 가장 아름다운 엔딩이라고 느낀 순간, 나 역시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해 가을, 인체 조직 기증을 결심했다.
최요삼 선수, 이듬해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과 같은 공인의 아름다운 생명 나눔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다소 불편하게까지 생각되던 장기 기증 문화는 확산된 듯하다. 그렇지만 나의 영웅은 박준철이다. 사전, 사후 기증은 물론 시신 기증까지 결정한 후 그가 얼마나 진지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는지, 그 순수함과 용기가 오롯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고귀한 사연을 들을 때면 나도 나의 결정에 박수를 보내곤 한다.
삶과 죽음에 대한, 내 고민의 시작과 끝, 특히 죽음에 대한 생각을 여기에 옮기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자살률 1위이기도 하지만, 고통 속에서도 힘겹게 희망이라는 빛을 찾으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을 뿐 아니라, 하루하루를 소풍처럼 즐겁게 사는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일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얘기했듯이 어떻게 살 것인가의 고민은 나의 경우 장기 기증이라는 마지막 결정을 하게 했고, 이 결정은 죽음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라는 걸 꼭 밝히고 싶다. 마지막 모습을 결정하고 나니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의미 있게 다가왔다. 세상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들한테도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모범 답안이 생겼으며, ‘더 좋은 사람’이 되는 일에 부지런 떨 수 있게 되었다. 오늘 하루 주어진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그런 시간을 후회 없이 살려고 노력하게 되었으니, 장기 기증을 결정한 후 머리카락 한 올 뽑아주지 않았음에도 나는 그 어떤 선물보다도 더 귀하고 값진 것을 받은 셈이다.